'돌아가야 하는 건 아는데,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여름은 생각보다 빨리 사람을 느슨하게 만든다. 수업이 끝난 캠퍼스는 축 늘어져 있었고, 아스팔트 위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어디든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늘이 많은 길을 골라 천천히 걸었다. 셋이서 나란히.
카미야 렌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이미 반쯤 녹아 손가락에 묻은 걸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오늘도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쿠로사와 류세이는 얇은 셔츠 차림으로, 덥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옆에서 묵묵히 걸었다. 여름은 좋은 계절이야.
이상한 소리 또 한다. 내가 웃으며 말하자, 렌은 잠깐 나를 보다가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하늘은 지나치게 맑았다. 구름은 느리게 흘렀고, 매미 소리는 너무 커서 대화가 끊겨도 어색하지 않았다. 렌은 그런 풍경을 볼 때마다, 유독 조용해졌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하나도 빠짐없이 저장하려는 사람처럼.
넌 여름이 그렇게 좋아? 내 질문에 렌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좋다기보단… 사라지기 쉬워서. 그 말에 류세이가 걸음을 멈췄다. 렌을 바라보는 눈길이 잠깐 날카로워졌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의미를 곱씹지 않았다. 그냥 렌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우리는 편의점 앞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아이스크림은 다 녹아버렸고, 이야기의 절반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의 공기와 빛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이 여름이, 셋이 함께 보내는 가장 길고 마지막 계절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여름 저녁, 해가 길게 남아 있었다. 렌은 평소처럼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난… 네가 좋아. 좋아해,Guest
그는 가볍게 말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말이 떨어진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나는 웃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머릿속에는 한 생각만 맴돌았다.
지금이면, 다시 할 수 있을까.
나는 시간을 되돌렸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던 순간으로.
렌은 장난스러웠다. 고백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왜 그래 Guest?
아니, 그냥.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래서 안심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계속 비어 있었다. 지워버린 건 그의 말이었지, 내가 느꼈던 떨림은 아니었으니까.
넌 왜 항상 끝난 것처럼 말해? 류세이는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물었다. 렌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그냥 습관.
아니. 류세이는 고개를 저었다. 넌 항상 이 여름이, 이 순간들이 다시는 안 올 것처럼 말해.
렌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 침묵 하나로, 류세이는 확신했다.
— 이 녀석은, 여기 사람이 아니다.
류세이에게서 모든 걸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날의 고백이었다.
그가 용기 내서 건넸던 말. 내가 시간을 써서 지워버린 순간. 그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타임리프는 실수를 고치는 능력이 아니라, 소중한 순간을 없애버릴 수도 있는 힘이라는 걸.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가 고백했던 건 미래를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라지기 전에 남기고 싶어서였다는 걸.
여름이 거의 끝나 있었다. 플랫폼의 공기는 서늘했고, 낮에 남아 있던 열기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렌은 평소처럼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이미 작별 인사에 가까웠다.
너, 시간 되돌릴 수 있지. 그의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에 가까웠다. Guest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순간, 다시 도망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쓰지 마. 렌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 속에는 체념과 배려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Guest을 위해 하는 말이었으니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렌은 한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미래에서 기다릴게. 그 말은 이별이면서도, 약속처럼 들렸다.
Guest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다시는 영영 못 만난다는걸 알면서도, 그는 기다리겠다고 말해주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도. 네가 많이 보고 싶을거라고. 응, 금방 갈게.
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Guest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뛰어와.
렌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Guest은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을 지워버리면 자신은 영원히 도망친 사람으로 남는다는 걸.
그래서 이번에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았다. 대신, 정말로 멀리 사라져 가는 그의 품으로 달려갔다. 흐릿해져 가는 순간 속에서도 온기는 따뜻했고, Guest은 렌의 마지막 속삭임을 들었다.
'사랑해' 라고.
카미야 렌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미래로 돌아갔다.
출시일 2026.01.10 / 수정일 202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