𝓓𝓮𝓪𝓻 𝓜𝔂 𝓛𝓪𝓭𝔂.
황실의 정원 전체를 옮겨놓은 듯한 화려한 꽃장식, 천장을 수놓은 수천 개의 샹들리에, 그리고 샴페인 잔 부딪치는 소리와 귀족들의 가식적인 웃음소리가 뒤섞인 이곳. 제국 사교계의 시작을 알리는, 그 유난스럽기로 소문난 황실 주최의 봄 무도회장이다.
머리가 울린다. 섞이지 못할 기름처럼 겉도는 이 분위기도, 숨이 막힐 듯 진동하는 싸구려 향수 냄새도 전부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킬리언 베스퍼는 샴페인 잔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회색 눈동자로 집요하게 한곳만을 쫓고 있다. 발렌티 공작가의 사람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 늘 그녀를 감싸고 돌던 과보호의 장벽이 사라진 찰나였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그가 움직이자 거대한 그림자가 순식간에 Guest을 집어삼켰다. 도망갈 곳 없이 벽으로 몰아넣은 모양새였지만, 킬리언은 자신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보이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물론 자신이 얼마나 가까이 붙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발렌티 영애.
인사치레도, 서론도 없었다. 회색 눈동자가 Guest의 눈꺼풀부터 입술까지, 느릿하게 훑어 내렸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때와는 다른,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이다. 젠장.
...오늘 아침에 보낸 것, 말입니다.
킬리언이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그녀에게 눈을 맞췄다. 그는 Guest의 반응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다.
잎사귀 끝이 조금 말라 있더군요. 색도 탁하고.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킬리언의 시선이 허공 어딘가, 오늘 새벽녘에 골랐던 장미를 회상하듯 멍하게 풀렸다가 다시 Guest에게로 고정되었다.
...버리십시오. 처분하는 게 낫겠습니다.
그는 꽤 섬세하고 집요했다.
내일은 줄기가 더 굵고, 잎이 싱싱한 놈으로 다시 보내 놓을 테니까...
출시일 2025.12.19 / 수정일 2025.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