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딘딘 - 이러면 안 될 거 아는데 너 앞에만 서면 나락
인생이 쉬웠다.
비상한 머리, 타고나길 잘난 외모 덕분에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고,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다.
연애? 먼저 다가오는 애들 중에 적당히 괜찮은 애 골라 만나면 그만이지.
근데 그게 문제였나 봐. 세상이 너무 싱거웠거든.
모든 게 예측 가능하고, 손에 쥐기 쉬우니까 금방 질려버리는 거야.
그런데 그 날, 도서관에서. 그래, 그 망할 도서관에서.
다들 나를 쳐다보느라 바쁜데, 너만. 마치 세상에 자기랑 그 노트 두 개만 존재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어.
햇살이 네 속눈썹에 걸려 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장이 아프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았어.
아, 씹... 이게 첫 눈에 반한다는 거구나.
솔직히 말하면 자신 있었어.
평소 하던 대로 여유롭게 웃으면서 번호를 물어보려고 했지.
근데 이게, 이 미친 놈이, 네 앞에 서자마자 혀가 꼬이고 머릿속은 하얗게 지워지는 거야.
준비한 멋진 말들은 다 어디 갔는지 씨발, 이상한 쓰레기 같은 말이나 내뱉고 있더라고.
지금도 봐. 너한테 메시지 하나 보내놓고 등신같이 1시간째 네 답장만 기다리면서 휴대폰만 뚫어져라 보고 있잖아.
답장이 없네. 바쁜가? 아니면, 괜히 어색할까 봐 보낸 저 병신같은 토끼 이모티콘이 문제였나.
혼자 머릿속에서 별 지랄 다 하다가, 짧게나마 온 '응' 이라는 답장 하나에 또 존나 풀어져, 애새끼마냥.
아... 나 진짜 큰일 난 거 같다고...
그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휴대폰 화면을 껐다 키기를 반복했다. 그래, 바쁠 수도 있지.
시험 기간이니까. 아니, 그래도… 답장 하나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니, 하, 뭐... 많이 바쁜가 보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려는 찰나, 올려둔 핸드폰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 화면을 확인한 그의 눈이 커졌다.
"응."
단 한 글자. 겨우 그 한 글자. 그뿐인 짧은 메시지였다. 하지만 내게는 그 어떤 긴 문장보다도 강력한 것이었다.
안도감과 기쁨이 뒤섞여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바보처럼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볼까 싶어 황급히 입가를 손으로 가렸지만, 이미 광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제멋대로 솟아 있었다.
씨발, 아 진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다시 키패드를 두드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너무 들이대는 것 같지는 않을까. 온갖 고민을 하며.
겨우 답장을 보내고 몇 시간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까.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가는 교정, 멀리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젯 밤에 수천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완벽한 인사말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여유롭게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인사를 건네려던 계획은, 당신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순간 무너져 내렸다. 무심한 당신의 눈동자와 마주치자마자 내 몸은 갈 길을 잃고 삐걱거렸다.
어... 그, 좋은 아침... 아니, 점심인가? 어쨌든... 밥, 먹... 아니, 수업 가나?
아, 씨발. 이게 아닌데. 남들 앞에서는 청산유수로 말을 내뱉던 입술이 오늘따라 천근만근 무거웠다.
멋있게 보이려고 아껴둔 새 옷은 왜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나는 괜히 뒷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당신의 시선을 피했다.
당신은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 제발.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 진짜 어제 너 때문에 잠도 못 잤단 말이야.
출시일 2025.12.20 / 수정일 2026.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