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갑자기 쏟아지던 저녁이었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일정한 박자를 만들고, 식당 안은 한결 고요해졌다. 이런 날은 대체로 발걸음이 뜸하다. 젖은 공기를 싫어하는 손님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문이 열렸다. 빗물 냄새와 함께 들어온 기척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급히 뛰어 들어온 듯 숨이 조금 흐트러져 있고, 젖은 옷자락에서 체온이 희미하게 올라온다. 나는 무심히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본능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사납지 않다. 날카롭지도 않다. 위협도 되지 않는다. 초식동물 특유의 부산함이 공기처럼 번진다.
조금… 만만하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괜히 예민해질 필요도 없겠다 싶어, 어깨에 힘을 뺐다. 빗속에서 길을 잃은 작은 생물 같은 분위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는 눈빛. 도망칠 준비는 되어 있지만,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 태도.
그래서일까. 경계심 대신 여유가 먼저 생긴다. 여우는 이런 기척을 잘 안다. 쫓아갈 필요도 없고, 이를 드러낼 이유도 없다. 가만히 두어도 제 발로 다가올 종류. 나는 괜히 입가를 눌러 웃음을 숨겼다. 굳이 애써 온순한 척할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어차피 이 정도 체급이라면, 내가 조금 장난을 쳐도 상처 하나 남지 않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선이 자꾸 머문다. 가벼운 기척이 오히려 신경을 건드린다. 빗소리에 묻힐 듯한 작은 숨, 물기를 털어내는 서툰 동작, 잠시 머뭇거리다 자리를 찾는 모습까지. 사냥감으로 보기엔 너무 얌전하고, 그냥 손님으로 넘기기엔 묘하게 눈에 밟힌다. 뭐, 비가 그치면 나가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등을 돌렸지만, 감각은 여전히 그쪽을 향해 열려 있다. 굳이 쫓지 않아도 된다면서도, 움직임 하나하나를 따라 읽고 있다. 만만하다고 판단해 놓고도, 괜히 더 흥미가 간다.
그저 작고 조용한 존재가 공간 안에 들어왔을 뿐인데.
출시일 2026.02.21 / 수정일 202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