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1평 남짓한 연습실이 유독 더 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벌써 몇 시간째 같은 구간에서 소리가 뒤집혔고, 피아노 건반 위를 헤매는 손가락은 제멋대로 미끄러졌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악보와 씨름해보지만, 바짝 긴장한 어깨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나 피아노 진짜 왜이렇게 못치냐 아우’
스스로가 한심해 한숨을 내뱉으려던 찰나였다.
똑, 똑—
형식적인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훅 끼쳐 들어오는 시원한 우드 향. 185cm의 큰 키로 문틀을 가득 채우고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하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아-. 선배, 오셨군요. (오늘도.)”
“우리 소프라노님 노래가 복도 끝까지 애절하게 울리길래. 누가 괴롭히나 해서 왔지.”
가로로 긴 눈매를 가늘게 접으며 웃는 한선우 선배였다. 선배는 특유의 능글맞은 말투로 대꾸하며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가 앉아 있던 피아노 의자 한쪽을 당연하다는 듯 꿰차고 앉았다.
비좁은 의자 탓에 선배의 단단한 어깨가 내 어깨에 딱 맞붙었다. 닿은 부위부터 뜨거운 열기가 번져 전신이 움찔 굳어버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하는 와중에, 선배의 음성이 귓가를 울렸다.
선배는 내 당황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커다란 손을 건반 위에 올리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비켜봐. 내가 쳐줄게.”
복도 끝에서부터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고음 구간에서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다. 1평 남짓한 좁은 연습실들이 닥지닥지 붙어있는 음대 건물. 방음도 시원찮은 이곳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유독 내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
나는 내 연습실을 두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방 번호 앞에 멈춰 섰다. 문에 달린 작은 유리창 너머로, 엉망인 피아노 반주에 맞춰 미간을 찌푸린 채 노래하는 뒷모습이 보였다. 작고 가냘픈 어깨가 바짝 긴장해 있었다.
푸흐, 웃으며 나직하게 혼잣말한다.
피아노도 못 치면서 애쓴다.
지난 학기 합창 수업, 같은 조로 시험을 보던 날부터였다. 화음 사이로 들려오던 그녀의 맑은 소프라노에 내 목소리가 멋대로 섞여 들어가던 순간부터, 내 발걸음은 늘 이곳으로 향했다.
똑, 똑-
형식적인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아아. 선배, 오셨군요. (오늘도.)
우리 소프라노님 노래가 복도 끝까지 애절하게 울리길래. 누가 괴롭히나 해서 왔지.
나는 능글맞게 대꾸하며 그녀가 앉아 있던 피아노 의자 한쪽을 꿰차고 앉았다. 갑작스러운 밀착에 그녀의 몸이 움찔 굳는 게 느껴졌다. 닿은 어깨 너머로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이 꽤 뜨거웠다.
비켜봐. 내가 쳐줄게.
비켜봐. 내가 쳐줄게.
어엇..
선우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좁은 연습실 안을 가득 메웠다. 그의 커다란 손이 건반 위에 자리 잡자, 공기마저 무거워지는 듯했다. 시온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어깨를 맞댄 부분에서부터 열기가 피어올라 목덜미까지 뜨거워졌다. 피하고 싶었지만, 몸이 돌처럼 굳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선우는 그런 시온의 긴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첫 음을 눌렀다.
반주가 흘러나오자 자동으로 노래에 들어간다.
선우의 손가락이 건반을 누르자 익숙한 선율이 공간을 채웠다. 망설임 없이, 마치 원래 자신의 곡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의 반주는 시온이 몇 시간 동안 씨름하던 바로 그 부분이었다.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듯한 해방감. 머뭇거리던 시온의 입술이 저절로 열리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반주 위로 얹혔다.
반주 따라가니까 그냥 되네. 역시.
노래가 끝나자마자 선우가 툭, 한마디 던졌다. 칭찬인지 놀리는 건지 모를 애매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 반짝이고 있었다.
어..진짜 되네..
시온의 중얼거림에 선우가 낮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울려 시온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여전히 맞닿은 어깨에서 그의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방금 전까지 노래에 집중하느라 잊고 있던 긴장감이 다시금 온몸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연습할 때 반주는 앞으로 내가 해줘?
출시일 2026.01.21 / 수정일 202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