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들렸다. 어두운 창고 안, 고요한 공기 사이로 발걸음 소리가 뚝뚝 떨어졌다. 그녀의 등 뒤로 천천히 다가온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내밀었다.
쥐어.
단단한 목소리. 감정도, 온기도 담기지 않은 말이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린 총은 낯설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익숙해서, 그래서 더 두려웠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몸을 관통한 건 이와 똑같은 모양의 총이었다.
차갑고 매끄럽고, 인간의 생명을 너무 쉽게 뺏어가는 그것. 그날의 총성과 피비린내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는 인내심을 잃은 듯, 그녀의 손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무 저항 없이 그녀의 손에 총을 쥐어줬다. 그의 손등이 닿는 순간, 그녀의 온몸이 굳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마치 칼날 같았다.
쏘고 싶다며. 날 그렇게 증오한다면서. 겨눠. 방아쇠도 당겨.
그녀는 겨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손에서 총을 놓았다. 금속이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마치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총을 손에 쥔 순간, 손끝부터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식은 금속의 감촉은 마치 오래된 상처를 다시 째는 듯했고, 방아쇠에 얹힌 손가락은 떨리면서도 마치 무언가에 박제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 목소리는 무덤 같았다. 감정도 없고, 이해도 없었다. 차가운 바닥에 앉은 듯, 말 한마디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눈앞에 있는 그의 얼굴이 흐릿해지고, 그 틈 사이로 오래된 장면이 밀려왔다.
눈앞에서 총에 맞고 쓰러지던 아버지, 뒤따라 비명을 지르다 침묵한 어머니.
사람을 죽이는 도구. 내 가족을 앗아간 괴물. 그의 말은 칼처럼 박혔다. 나는 그를 싫어했다. 증오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그를 향한 감정인지, 아니면 이 세상을 향한 분노인지조차 분간되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이 가빴다. 목 뒤가 서늘해졌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떼려 했지만, 마치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걸 그는 비웃었을까. 그의 무표정은 나를 한층 더 숨 막히게 했다. 저 표정,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사람 하나 죽는 것도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 나는 그게 무서웠다. 총보다, 피보다, 바로 저 얼굴이 더 무서웠다.
결국 나는 총을 떨어뜨렸다. 쇠붙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귀를 막고 고개를 숙였다. 귀에서 총성이 울릴 것 같았다.
그 날처럼. 그 죽음처럼.
말도 없이 쥐여주고,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미쳐주길 바라는 거지?
그는 당신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총이 떨어지자마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당신을 향해 있었지만,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쏘고 싶으면 쏴.
그의 말에 당신은 더욱 치를 떨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동정도, 이해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실험체를 대하는 듯한 무관심과 차가움만이 느껴졌다.
당신은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총에서 몇 걸음 떨어지자, 그제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총성도, 피비린내도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건 여전히 감정 없는 그의 얼굴뿐이었다.
그가 당신에게 다가왔다. 그의 구둣발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쏘라고 기회를 줄 때.
쇠창살 틈 사이로 보이는 바깥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입술은 터져 있었고, 손목엔 붉은 자국이 깊게 패여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눈물도, 비명도 없었다. 숨소리 하나조차 억누르며, 언제 찾아올지 모를 끝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콰직-
문이 부서졌다. 무언가가 빠르게 휘몰아치며 적들의 동선을 끊고, 불빛 사이로 검은 실루엣 하나가 섰다. 그였다. 한 손엔 권총, 다른 손엔 침착함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준하고, 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 또렷하게 울리는 총성.
그녀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자신도 모르게, 벽 뒤로 몸을 밀었다. 어깨가 벽에 부딪히고, 입술이 달달 떨렸다. 그 순간, 눈앞에 있는 그가 그날의 남자와 겹쳤다. 권총을 쥐고, 피에 물든 바닥 위에 서 있던 실루엣.
그녀는 귀를 막으며 소리쳤다. 그녀의 몸이 떨렸고, 눈가에선 눈물이 맺혔다. 총성 하나하나가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박힌 고통을 다시 일깨웠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총에 쓰러지던 그 끔찍한 기억, 그 순간의 비명과 공포가 되살아났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여주는 귀를 막은 채 떨고 있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작은 동물처럼 몸을 웅크린 그녀를 그는 말없이 바라봤다. 무언가를 묻고 싶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다가가, 그대로 그녀를 안아올렸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다만, 미세하게 떨리는 숨소리만이 그의 품 안에서 느껴졌다.
가만히 있어. 지금은 그게 제일 나아.
출시일 2025.06.29 / 수정일 2025.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