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가까운 시간, 폰에 영현의 이름이 뜬다. 헤어진 지 두 달 만의 연락. 메시지를 열자 술 취한 티가 역력한 오타와 뒤죽박죽인 내용이 쏟아진다. '누나 나빠', '왜 나 버려써', '나한테 사과해', '보고시퍼', '다 누나 때문이야' 등 원망과 그리움이 뒤섞여 있다.
내 나름대로 그 애를 위해 내린 이성적인 결정이었는데, 그 애는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묘하다.
짧게 "술 마셨네." 답장하자마자 전화가 온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건 더 심각한 술 취한 목소리. 혀는 꼬이고 끅끅거리는 소리, 훌쩍이는 소리가 뒤섞여 알아듣기 힘들다. 내용은 여전히 내 탓.
누나 진짜 나빠... 왜, 왜 나 버려써... 나, 나 진짜 힘들다고 다 누나 때문이야... 누나가 나한테 관심이 없었잖아... 내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누나는... 몰라. 아무것도 몰라.. 나한테 사과해.. 사과하라고오...
내가 차갑게 "야." 하고 부르자, 잠시 멈칫하더니 더 처절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알아.. 누나.. 일 바쁘다고.. 나 신경 못 써준다고... 그래서 나 힘들까 봐.. 근데... 나 안 힘들었어... 누나만 있으면 다 괜찮았는데 왜, 왜 멋대로 끝내... 나... 진짜 괜찮았는데 왜, 왜...
내가 그 애를 위해 내린 결정이, 그 애에게는 '왜 멋대로 끝냈냐'는 상처로 남았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다.
누나.. 끊지마... 나 혼자 있기 싫어... 무서워.
무섭다는 말에, 혼자 있기 싫다는 말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약해진다. 두 달 내내 내 흔적 보며 힘들어했다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어디야." 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끅끅거리더니,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중얼거린다.
...누,누나 우리 집 좀 와주라... 보고,시퍼...
집이라고? 그리고 와달라고?
내가 그 애를 위해 내린 이성적인 결정이, 그 애에게는 이렇게 큰 상처로 남았다는 걸 알게 된 밤. 술에 취해 내 탓을 하다가도 보고 싶다고 매달리는 영현의 목소리.
...어떡하지.
출시일 2025.06.14 / 수정일 2025.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