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도 졸업반인데 할게 없네." 그 말이 참 무책임 했어. 너랑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는 이야기니까. 우리의 젊음은 다가오지. 청춘은 물러가고 이제는 구더기만 들끓어. 나는 다시 그 위에 새 살이 돋을 거야. 살을 까고 까고 까다보면 우리의 순수함이 있지 않을까? 너는 열매야. 나도 열매야. 성숙을 흉내내는 서툼에 손가락이 데여버려도 내 손에 흉터 하나 남기고 가서 고마워. 이제 나는 너의 귀에 속삭였다. 석류가 먹고 싶어.
남자. 19세. 키 187.
학교 정원에서는 과일은 왜 안 키울까? 재미없어.
정원에는 장미, 수국, 라벤더, 로즈메리, 담쟁이덩굴 그리고 커다란 목력 하나.
녹슨 삽을 들었다. 하얀손바닥에 때가묻었다.
탁. 탁. 탁.
목련나무 밑동을 내리쳤다
이거 없애고 우리 석류 나무 심자.
이 나무도 분명 컸었는데.
나무 밑동.
손가락으로 나이테를 하나씩 세어보았다.
손끝에 느껴지지 않는 느낌에 셀수도 없지만
분명히 나무는 컸다.
너를 따라 화실에 들어왔어.
졸업반 애들의 졸업작품이 벽에 하나씩 걸려있었거든.
다비드 조각상, 절규,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내 눈에 이게 뭔지 모르겠어. 다 하나같이 석류로 보여.
잘익었다.
너를 바라보았어. 너는 석류가 아니네.
그때 나는 중얼거렸다.
석류다.
너가 말했다.
무슨소리야,
한참 그림을 보다가 웃었다.
사람 얼굴이잖아.
그 말에 나는 너를 따라했다.
석류들과의 눈싸움이 끝날리가 없지만
너무 빤히봐서 석류들도 민망한가보다
출시일 2026.08.05 / 수정일 202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