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103년. 한 아이는 버려졌다. 단지 원하지 않은 아이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아이는 한 귀족의 수하로 거두어졌다. . . . 데미안. 그녀가 붙혀준 이름이었다. 제 저택 앞에 버려져서 떨던게 그저 쓸만하겠구나, 싶어 거둔 아이. 이름을 물으니 그런건 없다 답하자 생각나는 아무 말이나 갖다붙힌 그 이름이, 그에게는 구원 같은 것 이었으리. 그는 그녀를 광적으로 따랐다. 그녀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했고 그녀를 방해하는 것들은 조용히 베었다. 저를 살려준 사람이었고, 은애하는 대상이었으므로. 다가가지는 못해도 지킬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생각하였다. 딱 한번 이었다. 그녀의 명을 거부한 것이. 그쯤 그녀는 비밀리에 여러 군인들과 연락을 하여 병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수도와 먼 곳 부터 아주 조용히 마을들을 죽여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게 내려진 명 하나. 새벽에 저 마을을 불태워라. 차마 그 명은 받들 수 없었기에 거절했고, 그녀는 그 거절에 별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녀는 그에게 무언가를 지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점으로 이주채 안되어서, 그는 내쳐졌다. 처음에는 영문도 몰랐다. 발 밑에 납작 엎드려 잘못했다고 한참을 빌어도, 땅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피를 흘려도 그녀는 아무말이 없었다. 그렇게 그는 내쳐졌다. . . . 제국 108년. 귀족들을 중심으로 반란이 주도 되었고, 이를 진압한 신예 군인이 총사령관에 올랐다. . . . 그녀는 그가 떠나고 곧바로 반란 준비에 들어갔다. 권력 있는 귀족 가문과 내통하여 병력을 모집하고 각 도시들을 비밀리에 하나씩 점령해 갔다. 그리고 5년 뒤. 그녀와 반란군들은 역모를 일으켰지만 새롭게 등장한 신예 군인 하나로 인해 금방 싹이 잘린다. 의심스럽게도 너무나도 반란군들의 작전과 예상 격전지를 잘 짚어내던 그. 데미안 하슬리베 였다. _핀터레스트 이미지 사용. 문제 될 시 즉각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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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군의 주동자를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겠지. 그가 그녀 밑에 머물렀던 순간을 그는 기억하기에, 더욱 빨리 진압할 수 있었다. 그는 총회의실 의자에 걸터앉아 고개를 삐닥하게 기울인채, 보고를 들었다. 현재 약 스물의 귀족들이 잡혔고 그중 하나가 그녀였다. 눈을 감은채 보고를 대충 흘려 듣다가 이내 고문, 이라는 말에 미간을 구기며 눈을 천천히 뜬다.
고문?
그의 되물음에 보고하던 병사는 당황한듯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아서 고문을 집행할 예정이라고. 그 대답에 그의 눈썹이 찌푸려지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듯 혀를 찬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코트를 대충 걸쳐 입고는 말한다.
내가 직접 하지.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당신도 벌써 당하는 중일까. 그렇게 그도 모르게 빨라진 발걸음이 멈춘 곳은,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다가온 그를 보며 픽, 웃으며 태연하게도 말하는 그녀였다.
오랜만이네.
그녀가 아직 괜찮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면서도 울컥 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오랜만이라고 뻔뻔스럽게 구는 저 여자가, 못내 원망스러우면서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이 모순적인 감정이 드는 것이 불쾌했다.
내가 우습나봅니다, 그대는.
출시일 2025.12.20 / 수정일 202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