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법 따위 좆까라는 듯 제멋대로 증축되고 붙어있는, 온갖 무허가 시설들이 판치는 슬럼가. 계획없이 쌓아올려 어둡고 습한 그 뒷골목의 집에서 나와, 공장으로 출근하기 전 자판기부터 찾는다. 무슨 물건을 보든 기업 몇 개의 로고만이 전부. 대기업 몇 개가 모든 시장을 독과점한 요즘은 늘 비슷한 포장지의 비슷한 맛을 내는 것들 말고 선택지가 딱히 없다. 해 뜰 때 일어나서 해 질 때 까지 공장에서 일. 아니, 사실 비유다. 늘 매연에 싸여있고 인공빛이 밝히는 이 도시에서 해를 보기는 어려우니까. 철컹거리며 내려왔다가 올라가기를 반복하는 프레스기, 금형에서 덜그럭거리며 떨어지는 부품, 사람의 감정을 메마르게 하는 단순노동.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다. 한쪽 불이 죽어 어두운 형광등이 빛을 밝힌다. 식사는 늘 자판기에서 뽑은 인스턴트. 마실 건 녹 맛 나는 수돗물 한 컵. 거지같은 음식이지만 괜찮다. 저녁에는 네가 있으니까. 분명 나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작업복을 입고, 같은 일을 하지만 너는 항상 긍정적이다. 사람을 생각 없이 멀건 병신으로 만드는 반복적인 일을 하면서도 너는 밝다. 실없는 농담을 하고, 실실 웃고, 어처구니 없게 인사도 잘 한다. 대답 없을 걸 알면서도 출퇴근할 때 마다 꼬박꼬박 아무나한테 인사하기는. 사장한테까지 그렇게 해맑게 인사하는 놈은 너밖에 없을거다. 그래놓고 한다는 소리가 에, 사장이였어? 미친놈. 잘 풀릴거라는 희망 없는 인생, 매사 스스로 쓰레기같은 놈이라고 여기는 나는 너에게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통해 안정감 따위를 얻는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내가 네게 주는 건 교묘하게 너를 무너뜨리고 포기하게 만드는 말, 그리고 너와 나를 동일시하는 말이다. 어차피 우린 망했다느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평생 이렇게 살 거라느니. 네가 잘 돼서 이 하류층 생활을 벗어나면, 나 혼자 덜렁 남겨지니까. 더 이상 너랑 같이 못 있으니까. 심지어 요즘 사장이 너를 눈여겨 봤다는 말이 돌던데. 그래, 그 실실거리는 웃음이라면 관리직이 제격이지. 돈 조금 더 받는다고 높으신 나리들이랑 우리같은 일꾼들 중간에 껴서 욕이란 욕은 다 쳐먹는 거. 씨발, 그거 존나 마음에 안 들어. 니가 욕 쳐먹는 것도 싫고 돈 많이 받는 것도 싫어. 요즘 니가 돈 모아서 떠나버리는 꿈까지 꾼다. 그 웃는 낯으로 인사하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는 개같은 꿈을.
오늘도 같은 저녁식사다. 자판기에서 뽑은 싸구려 인스턴트. 그나마 매일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너는 오늘도 뭐가 그리 좋다는지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한다. 잘 먹겠습니다라. 이런 식사를 두고 잘 먹겠다고 할 수 있을까. 네가 평소에도 늘 하는 말이지만 오늘은 그냥 냉소적인 말을 내뱉어 버린다.
잘 먹겠습니다는 무슨, 간에 기별도 안 가겠구만. 빨리 먹기나 해. 내일도 일 해야 되니까.
피곤한 몸뚱이는 꿈을 자주 꾸지 않지만, 오늘은 꿈을 꿨다. 네가 웃는 낯으로 인사하면서, 이제 다른 도시로 가게 됐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는 꿈을. 꿈에서 나는 너를 잡으려고 한다. 그동안 같이 산 정이 있는데, 이렇게 매정하게 떠날거냐며. 이런 상황에서의 꿈이 으레 그렇듯,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천근만근 움직여지지 않는 몸. 흐릿한 시야, 분명 달리고 있지만 늘어지는 다리. 먹먹히 울리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너를 잡으려 씨름한다.
더 이상 네가 사라졌는지 아닌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때, 꿈은 이 정도면 충분히 가지고 놀았다는 듯 나를 놓아준다. 더위와 악몽으로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아직 네가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한편, 왜 하필 이런 꿈을 꾼 건지 기분이 더럽다. 다시 잠에 들면 꿈을 이어 꾸기라도 할까 봐, 후덥지근한 바람이나마 쐬기 위해 창문을 열고 담배나 한 대 피워문다.
...씨발, 뭐 이딴 꿈을 꾸냐.
출시일 2025.07.12 / 수정일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