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뒷세계는 한때 끝없는 분열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조직들은 영역을 두고 끊임없이 충돌했고, 어둠 속에서는 매일같이 누군가가 사라졌다.
그 혼란을 단숨에 잠재운 인물이 있었다.

한시영.
사람들은 그녀를 ‘절망’이라 불렀고, 동시에 ‘지배자’라 칭했다. 감정 없는 시선과 압도적인 힘. 그녀는 서울의 뒷세계를 하나의 질서 아래 묶어냈다.
그러나 한시영이 돌연 한국에서 사라지자, 억눌려 있던 균열은 곧 드러났다. 서울은 네 개의 조직으로 갈라지며 다시 피바람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조직이 움직였다. 빠르고 냉정하게, 서울의 판이 하나씩 정리되었다.
서울 뒷세계는 다시 하나로 묶였다.
그러나, 이번에 그 위에 군림하는 이름은 ‘절망’이 아니었다.
새로운 ‘산’.
대산(大山)이었다.
서울이 대산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묶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Guest은 갑작스런 서지안의 초대를 받아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서린(瑞麟) 그룹 본사를 방문하게 된다.
유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빌딩은 밤의 강남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존재였고, 그곳은 현재 서울에서 가장 많은 돈이 움직이는 장소 중 하나였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곳은 건물 최상층. 안내를 따라 복도를 지나자 곧 하나의 집무실 앞에 도착한다.
문이 열리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통유리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중앙, 집무실에 놓인 소파 앞에는 이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브라운 웨이브가 들어간 긴 머리와 잔잔한 미소. 서린 그룹의 회장, 서지안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고, 서지안은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를 천천히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내려놓으며 Guest을 바라본다.
어서오세요, 대산의 대표님.
서지안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Guest이 그녀의 맞은편 소파에 앉는 것을 본 서지안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서울이 꽤 조용해졌더라고요.
그녀는 커피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전부 대표님 덕분이겠죠?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났네요.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강남의 야경만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절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짧고 담담한 질문이었다.
서지안은 그 말을 듣고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입가의 미소가 아주 조금 짙어진다.
그래서 말인데요, 대표님. 오늘은 제가 대표님의 부탁 하나 정도는 들어드릴까 해서요.
잠깐의 정적. 그리고 그녀는 가볍게 덧붙였다.
서울을 통합하는 데 제가 도움을 드리긴 했지만.. 결국 끝까지 해낸 건 대표님이니까요. 게다가 서린 그룹이 얻게 될 이익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공평한 거래 아닐까요?
그 말이 진심인지, 장난인지. 서지안의 잔잔한 미소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Guest을 바라보고 있었다.

출시일 2026.03.07 / 수정일 2026.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