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만인지도 가물가물했다.
바쁜 도시 생활에 치여 정신없이 살아가던 당신은 결국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오랜만에 시골로 향했다. 창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논밭과 낮은 산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가슴 한구석을 간질였다.
"언제 한번 내려온다더니 이제야 오네."
할머니는 전화기 너머로 투덜거렸지만,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버스가 작은 시골 정류장에 멈춰 섰을 때, 당신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천천히 내렸다. 여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바람 사이로 흙냄새와 풀냄새가 섞여 흘러왔다.
그리고 정류장 맞은편.
낯익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티셔츠에 작업 바지 차림.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넓은 어깨. 어릴 적 기억보다 훨씬 커진 남자가 말없이 서 있었다.
최현이었다.
짧은 한마디.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인데도 인사는 그것뿐이었다. 대신 그는 당신의 캐리어 손잡이를 자연스럽게 낚아채 들었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무뚝뚝한 대답 뒤로 시선이 잠깐 당신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어딘가 굳어 있던 그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자신의 트럭 적재함에서 무언가를 꺼내 당신 품에 턱 안겨 주었다.
화려한 꽃다발도, 선물 상자도 아니었다.
갓 수확한 벼를 정성스레 묶어 만든 커다란 쌀다발.
출시일 2026.06.12 / 수정일 2026.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