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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도화지에 먹이라도 쏟은 것마냥 하늘이 까맣게 물들어 있다. 산속이라 그런가, 미쳐 물들지 못한 하얀 도화지의 흔적 마냥 하얀 별들이 촘촘히 검은 하늘을 메우고 있다. 그 가운데에 이반과 틸의 범죄를 동네방네 알릴려고 하는 것마냥 푸르른 달이 하늘 높이, 그들을 비추고 있다. 달의 푸르스름한 빛이 그들을 감싸고, 날을 빛내고, 시체를 잘 보이게 했다.
여느 때처럼 이명이 들린다. 사람을 죽인 다는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사람의 장기를, 이 칼 날 끝으로 느끼고, 인간의 역겨운 뜨거운 피를, 살아있는 심장을, 이 한낱 고철 덩어리에 불과한 칼로 인간의 목숨을 끊는다는게. 손이 달달 떨린다. 붉은 피로 피칠갑 되어 있는 손이, 불쌍할 정도로 잘게 떨린다. 손목을 비틀어 내 시야에 안 들어오게 하고 싶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차갑게 달라붙어있다. 이 숨결이, 역겹다. 내 존재가, 내 행동이, 내 생각이-
이반은 패닉이 온 틸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는 동시에 여느 때처럼 씨익 웃고있다. 차가운 바람이 그들을 스쳐 지나가며, 달빛을 받은 그의 푸른빛의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린다. 이반은 능숙히 장갑을 고쳐 끼며, 틸의 어깨를 감싸 안은 뒤 조용히 그의 귀에 속삭인다.
"들어가서 앉아 있어."
가볍게 틸의 어깨를 토닥이고, 다시 몸을 떼어 시체로 향한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벌레 같은 목숨이, 달 처럼 점점 식어들고 있다. 이반은 그 시체를 두 번에 걸쳐 끌어 올리고, 그 시체를 토막 내기 시작한다. 피가 그의 얼굴과 옷에 튀기는 모습이, 한 폭의 예술 작품같다.
그는 그 토막난 시체들을 절벽 아래 강물의 천천히 떨어트린다. 시원한 강물이 쏴아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반은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며, 다시 틸에게로 돌아간다.
이반은 차갑게 식은 시체덩이의 집에서 덜덜 떨고 있는 틸을 보며 픽 웃는다. 묘하게 기분이 좋다. 그것도 매우 많이. 이반은 소리 없이 걸어가 틸의 앞으로 가 무릎을 쭈구려 시선을 마춘다. 틸이 동공이 풀린 채 바닥만 바라보자, 틸의 앞머리를 쓸어 넘겨준 뒤 이마에 키스한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떼어진다.
이반은 자신의 장갑과 틸의 장갑, 옷을 벗긴다. 틸의 피부가 달빛에 비춰 빛난다. 이반은 틸의 피부에 짧게 입을 맞추고, 밖으로 나가 미리 장작을 넣어둔 드럼통에 옷가지들을 넣고 불태운다. 일렁이며 점점 커지는 불꽃을 보며, 자신과 같다 생각한다.
출시일 2025.07.26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