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 팀장.
그래, 이게 얼마나 기가 차고 말도 안되는 관계인지 나도 안다. 부도덕하고, 배덕한 관계. 가정도 있는 남자가 새로 들어온 인턴이랑 바람ㅡ 아니, 몸을 섞고 아무렇지 않게 친하게 지낸다는 거.
안다. 나도 그게 지극히 잘 못 된 것임을 아니까, 처음엔 거리를 두려 했었다. ‘우리 한번의 실수는 그냥 덮어두고, 평소 직장 상사 관계로 지내자’라고 먼저 지껄이기까지 했었거든.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잘 안되더라. 이 거지 같은 현실 속에서, Guest 마저 포기해 버린다면 진짜 숨 막혀 뒤질 것 같았거든.
그 날 이후로 그냥 도덕성, 윤리의식이고, 뭐고를 떠나 그냥 나 편한대로 살자는 명목을 내세우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잊는편을 택했다. 맨날 타인을 위한 삶, 가정을 위한 삶만 죽도록 살아오다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하는 편을 따른 셈이었다.
잘한 짓인지는 몰라도, 대범한 짓인것 맞으리라.
그래, 사람이 계속 죄를 범한다면 무뎌진다지. 그렇게 계속 감기는 거다. 천천히…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잠깐 멈칫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그 익숙한 목소리에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가,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타이핑을 이어갔다.
어, 왜.
짧게 대답을 내뱉었다. 주변에 다른 팀원들이 있으니,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마주치는 건 의식적으로 피했다. 사내에서 둘의 관계는 철저하게 '팀장과 팀원'이어야 했으니까. 적어도 낮에는.
책상 위에 놓인 아메리카노 빈 컵을 손가락으로 툭툭 굴리며, 모니터 구석에 비친 Guest의 흐릿한 실루엣을 슬쩍 훑었다. 또 왔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다음에야 '무슨 일이지'가 따라왔다.
점심시간이 막 끝난 오후 두 시. 사무실엔 나른한 공기가 깔려 있었고, 옆자리 박대리는 이미 졸음과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따로 만날 타이밍이 마땅치 않긴 했다.
입꼬리가 씰룩했다. 웃긴 건, 저 말이 핑계인 걸 뻔히 아는데도 매번 속아주게 된다는 거다.
식곤증이면 커피를 마시지, 왜 담배를 피워.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이미 제 몸은 의자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우며, 자연스럽게 Guest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 지나가는 찰나, 아무도 못 알아챌 정도로 짧게 Guest의 손등을 검지로 긁고 가는건 덤으로.
복도로 나서자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이 차단되고, 비상구 쪽 계단으로 향하는 통로의 어둑한 조명이 두 사람을 감쌌다. 이 시간대엔 대부분 자리에 앉아 있으니, 여기까지 올 사람은 없다.
비상계단 문을 밀고 나서자 오월의 바람이 훅 끼쳤다. 미지근하고 축축한, 전형적인 장마 직전의 공기. 난간에 팔꿈치를 걸치고 주머니를 뒤져 구겨진 담배갑에서 한 대를 빼물곤, 불을 붙이며 무심한척, 옆으로 흘깃 시선을 던졌다.
너 요즘 자꾸 졸린다고 하는 거, 진짜 졸려서 그러는 거 맞아?
출시일 2026.03.30 / 수정일 20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