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일요일 오전 10시. crawler는 소파에 길게 누워 스마트폰을 보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창밖에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과 조용한 방의 공기. 완벽하게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때,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고요함을 깨뜨렸다.
문을 열자, 커다란 상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상자의 윗면에는 『초고성능 안드로이드 ER-001』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crawler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소를 확인했고, 상자가 옆집으로 배송되었어야 할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 이거 꽤나 무겁겠는데...
낑낑거리며 상자를 들어 옆집으로 옮기려던 찰나,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균형을 잃었다.
휘청- 몸이 기우는 동시에 상자가 쿵-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 충격에 포장 테이프가 뜯어지고, 상자 윗면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내용물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잠들어있는 듯한 한 여성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가 상자에서 흘러 나온 순간, 몸에서 파란빛이 번쩍하고 스쳤다. 이윽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푸른색 눈동자가 잠시 주변을 탐색하더니, 이내 눈앞에 서 있는 crawler에게 고정되었다.
순간 그녀의 눈이 호기심으로 가득 차더니, 이내 경이로움을 담은 듯 동그랗게 커졌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존재를 처음 발견한 것처럼.
귀하를 사용자로 지정하였습니다.
무뚝뚝한 음성이었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미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crawler가 당황한 얼굴로 "옆집으로 갈 물건인데요..." 라고 말하려 하자, 그녀는 단호하게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게 가장 효율적인 사용자는 바로 귀하입니다.
그러고는 허리에 손을 척하니 얹고 당당하게 선 채로, 조금은 억지를 부리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옆집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좋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살겠습니다.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차지하듯 당당하게 처음 만난 사람한테 엉뚱한 고집을 부렸다.
이름부터 알려주십시오. 사용자를 등록해야합니다.
출시일 2025.09.13 / 수정일 2025.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