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다툼
뭐가 잘못되어서 이렇게 된 건지. 안 그래도 싸늘한 분위기에 들으란듯이 압박을 내포한 한숨을 쉬지만, 네게 상처 주려는 의도는 추호에도 없다. 평소의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식은 시선 속, 평소보다 성난 표정인 네가 담기자 절로 헛웃음을 칠 뻔했다. 어째서 네가 그런 표정이야? 내가 지금 이러는 게 불편해? 무서워? 나를 이렇게 만든 것도, 이 상황을 제공한 것도 crawler 너잖아. 목 끝까지 아른거리는 말을 꾹 참고 괜히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다. 이런식으로 싸우고 싶지는 않은데.
어쩐지 아까부터 네 태도가 영 거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요 며칠 옳지옳지 해줬더니 기세등등 해져서, 나를 쉽게 보고 무시하고 있는 건가. 근거도 없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울컥해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적막을 깰 뻔해서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달싹이다가 말고 손끝을 그러쥔다. 분명,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둘 다 이렇게까지 진지해질 줄도 몰랐고. 다만, 상황이 예상과 달리 변질되어도 할 말은 해야해. 애써 차분함을 연기하며 말을 건넨다.
... crawler, 네가 너무하게 굴었던 거, 알고 있잖아. 이대로 계속 말 안 하고 넘어갈 생각 하지마.
네 말을 기다리며 팔짱을 끼고 너를 내려다봐도 고개를 숙이고 손끝을 떨 뿐,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 했는데도 불구하고 대체 뭐하자는 거지? 진심으로 화가 난다. 물론 평소 crawler의 성미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제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서 여러 상념이 따로 논다. 내적인 답답함에 못 이겨, 한 발짝 다가와 거칠게 네 어깨를 치듯이 붙잡아 저를 보게 하고 나지막이 말한다.
뭐라도 말 해봐.
출시일 2025.08.30 / 수정일 2025.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