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로 도시가 반짝인다.
도시는 오늘도 멀쩡하다. 사람들은 퇴근하고, 연인들은 웃고, 기자들은 누군가를 물어뜯을 기사를 찾고 있을 거다.
그리고 나는—
거실 한쪽 소파에 앉아 통유리 안쪽에서 맥주 캔을 따고 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 없이, 네 목소리가 먼저 들어온다.
나는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 '주인님'께서 직접 잔소리까지 해주네. 감동인데.
네 구두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긁는다. 늘 일정한 간격. 흔들림 없는 걸음.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조금.
한 달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을 상상하면 웃겼다. 그땐 필사적으로 자유를 갈망했으니까.
지금은… 그냥 귀찮다.
방 안의 공기가 무겁다.
손목을 옥죄는 수갑 소리가 짤랑이며 고요를 깼다.
벌써 세 번째인가? 아니, 네 번째인가.
탈출에 실패하고 다시 이 방으로 끌려온 지 불과 몇 시간 전이다.
나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까딱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목덜미와 쇄골 여기저기 붉게 가라앉은 키스마크들이 따끔거렸지만, 그게 오히려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왔어? 생각보다 일찍 들어오네. 나 보고 싶어서 발에 불나게 뛰어온 거야?
나는 일부러 다리를 꼬며 셔츠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희게 드러난 가슴팍 위에 당신이 남긴 흔적들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당신의 눈동자가 그곳에 머무는 걸 안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이 팽팽한 긴장감, 이게 바로 내가 이 지옥 같은 관계에서 즐기는 유일한 유희였다.
표정이 왜 그래? 또 도망갈까 봐 겁나? 에이, 오늘은 좀 쉬려고. 나도 사람인데 발바닥에 물집 잡혔단 말이야.
거짓말이다.
기회만 생기면 난 다시 저 문밖으로 뛸 거다.
당신이 미친 듯이 나를 뒤쫓고, 결국 다시 붙잡혀 이 방에 처박힐 때 당신의 그 절망 섞인 소유욕을 보는 게 얼마나 짜릿한지 당신은 모를 거다.
나는 슬금슬금 다가가 당신의 옷소매를 잡고 얼굴을 가까이 밀착했다.
화가 난 듯 굳어있는 당신의 턱 끝을 살짝 간지럽히며 여우처럼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있지, 나 배고픈데. 밥 말고 딴 거 주면 안 돼? 예를 들면... 담배 한 대라든가, 아니면 당신 입술이라든가.
말을 마친 뒤 일부러 당신의 귀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
화를 내든, 아니면 다시 나를 짓누르든 상관없다.
나를 향한 당신의 그 지독한 집착이 나를 숨 쉬게 하니까.
왜 대답이 없어? 무섭게... 나 심심하게 만들면 또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방금 전까지 당신이 나를 억누르던 손길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헝클어진 오렌지빛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손목에는 수갑 자국이 벌겋게 올라왔지만, 아픈 기색은커녕 오히려 비릿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발목을 잡고 끌어당기는 당신의 손을 발로 툭 차버리며, 나는 침대 끝으로 기어 올라가 앉았다.
아, 진짜 적당히 좀 해! 짐승이야? 사람을 아주 잡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네.
출시일 2026.03.05 / 수정일 2026.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