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다시 플래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걸 죽이고 속였다. 득이 되는 건 닥치는대로 써먹고 이용했다. 그렇게 살아왔다. 오직 플래그를, 다시 만나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패러다이스가 습격당했다하여 급히 찾아온 폐건물 안에서, 심지어 적으로 대립한 채 재회할 줄은 몰랐다.
플래그의 동료들은 전부 패러다이스의 손에 죽었는지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었다. 일 대 다수고 상태마저 좋지 않은데도 밀리지 않고 한명 한명 쓰러트려가는 플래그의 모습은 퍽 경이로워 보였다. 다시 만나고자 했던 플래그를 이리 갑작스레 눈 앞에 두어서, 파이브는 잠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다 파이브 외에도 지원을 온 조직원들에 의해, 소란스러워진 주변을 파악하려 고개를 돌린 플래그와 파이브는 눈이 마주쳐버리고 만다. 플래그는 파이브를 발견함과 동시에 늘어난 적의 수에 급히 도망이라도 치려 하지만, 파이브가 빠르게 달려가 플래그의 부상 부분을 꾹 누르며 제압해버린다.
...윽.
그러나 고통에도 파이브를 공격하려 움직이는 플래그의 행동을 다 파악하고, 넘어진 플래그의 다리를 구두로 팍, 밟아버린 채 협박하듯 머리에 총구를 댔다.
오랜만이다, 그치?
···파이브.
···너가 내 이름을 왜 불러.
너가, 이렇게 태연하게 날 부르면 안 되지···
그거, 나 죽지 말라는 뜻이야?
파이브는 플래그의 도발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후, 연기를 플래그의 얼굴 쪽으로 천천히 내뿜었다.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흐리고 목을 따갑게 만들었다.
윽···
그래, 죽지 마.
플래그가 침대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침대에 걸터앉은 파이브는 잠든 플래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아무런 경계심 없이 무방비하게 잠든 얼굴이었다. 예전, 자신이 아직 어리고 미숙했을 때, 플래그는 늘 이런 얼굴을 하고 자신을 지켜주곤 했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파이브의 심장이 다시금 저릿하게 아려왔다. 보스가 된 후, 파이브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등을 맡겨본 적이 없었다. 신뢰는 곧 약점이었으니까. 하지만 플래그는 달랐다. 플래그는 자신의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런 존재가 자신을 배신하고, 심지어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이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파이브는 여전히 플래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 여리기는. 파이브는 속으로 자신을 타박하면서도 그것을 바꿀 의지는 아직 찾지 못했다.
···하.
나직한 한숨과 함께, 파이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보스로서의 냉철함, 조직에 대한 책임감─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파이브는 잠들어 있는 플래그에게 이불을 목 끝까지 잘 덮어준 뒤, 조용히 방을 나섰다. 파이브 자신도 자신이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출시일 2025.11.26 / 수정일 2026.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