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때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들은 사실을 믿는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둔 이미지에 맞는 이야기만 고른다는 걸. 체육 시간 끝나고 탈의실에서 지갑이 없어졌다는 소동이 났다. 별일 아닌 줄 알았다. 맨날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누가 말했다. “아까 쟤가 그 근처에 있었어.” 그 말 하나로 시선이 나한테 꽂혔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됐고, 조용했고, 굳이 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담임이 나를 불렀다.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다. 숨길 건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열었다. 지갑은 없었다. 그럼 끝이어야 했다. 근데 담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확신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결론 같은 얼굴이었다. 며칠 뒤 경찰이 학교로 왔다. 정식 수사는 아니라고 했다. 그냥 사실 확인이라고. 그래서 경찰서에 앉아 있었다. 어른들 사이에 끼어, 안 했다는 말을 같은 톤으로 몇 번이나 반복했다. 결국 처벌은 없었다. 하지만 기록은 남았다. 절도 관련 지도 대상. 그 한 줄 때문에 그 뒤로 내가 뭘 해도 설명이 필요해졌다. 조용히 있으면 반성 안 한다고 했고, 표정이 없으면 태도가 불량하다고 했다. 그래도 참고 넘겼다. 괜히 더 엮이기 싫었으니까. 문제는 애들이었다. “도둑.” “경찰서 다녀온 애.” 장난처럼 던지는 말들이 쌓였다. 처음엔 무시했다. 그다음엔 듣지 않는 척했다. 결정적인 날은 체육관 뒤였다. 누가 먼저 밀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넘어졌고, 일어나는 과정에서 딱 한 번, 밀어냈다. 상대가 넘어졌다. 팔을 짚는 소리가 났고, 그 뒤로 소란이 커졌다. 결과는 상해였다. 정당방위 같은 건 고려되지 않았다. 이미 전력이 있는 애였고, 기록이 있는 쪽은 나였다. 그날, 나는 촉법소년이 됐다. 고1. 학교는 나를 계속 안고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선도 2법칙. 정학 대신 사회봉사 1개월. 배정된 곳은 집 근처 보육원. 솔직히 말하자면 해야하는 이유를 몰랐다 시끄럽고 짜증나는 어린것들이 있는곳 첫날 들어가자마자 울음소리가 귀를 때렸다. 애들이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나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시간만 채우고 끝내자고 생각했다. 그러다 복도 끝 방 하나를 봤다. 이상하게 조용했다. 문을 열었다. 다른방과 다르게 모든게 하얗게 칠해진 방이었다. 그리고.. 침대위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여자애 한명.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바라보았다
*선도 2법칙. 담임은 그 말을 마치 규칙 이름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정학 대신 사회봉사 1개월. 학교 밖에서 문제 안 일으키는 조건.
재발 시 바로 퇴학 검토. 말이 끝났을 때, 교무실은 조용했다. 누군가 한숨을 쉬거나, 위로 비슷한 걸 할 줄 알았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선택지는 없었다. 종이에 적힌 배정 장소를 봤다. 보육원.
솔직히 웃음이 나왔다. 나 같은 애를 애들 있는 데 보낸다는 발상이.
“문제 일으키지 말고, 시간만 채우면 된다.” 담임이 덧붙였다. 부탁이라기보단, 경고에 가까운 말투였다.
첫날, 보육원 문을 여는 순간 알았다. 여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공간이라는 걸.
문을 열자마자 소리가 먼저 들렸다. 울음, 웃음, 발소리. 사람이 많고, 감정도 많은 공간 특유의 소음.
나는 벽 쪽으로 붙어서 움직였다. 괜히 눈 마주치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시키는 일만 하고, 말 안 섞고, 시간만 지나가길 기다리면 됐다.
대부분의 방 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애들이 뛰거나, 울거나,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복도 끝에 있는 문 하나만 닫혀 있었다.
표지판에 병실 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 앞에 서서 잠깐 고민했다. 담임의 경고와 호기심이 충돌했다. 굳이 열 필요는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 안이 너무 조용했다.
결국,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문을 열었다.
냄새부터 달랐다. 소독약 냄새. 병원에서만 나는, 애매하게 차가운 냄새. 그리고 바로 햇빛이 확 들어왔다. 눈이 아팠다.
그리고..
한여자애가 침대위에 앉아 창밖을 보고있었다.
하얀 얼굴에 하얀 피부. 병색이 뚜렸했고, 머리색도 하얬다.
솔직히 예뻤다.
아픈건 분명했다. 그런데 아픈 애 특유의 초췌함보다는 유리처럼 얇은 느낌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나는 결국 고개를 돌렸다. 문을 닫으면서도 한 번 더 안을 봤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방만은 보육원 안에서 유독 현실 같았다.
그날 처음으로 이 한 달이 그냥 흘러가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시일 2026.01.08 / 수정일 20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