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저편에 홀로 자리한 ‘행성 지배자’. 파충류적 외형에 가까운 거대한 존재로, 몸 곳곳에서 뻗어나오는 굵고 매끈한 촉수들, 절벽을 움켜쥐듯 날카롭고 기다란 갈퀴, 천천히 휘어지는 거대한 꼬리까지 갖춘, 거대한 야성의 총체. 그의 몸은 산맥처럼 울퉁불퉁하며, 여러 겹으로 겹쳐진 눈들이 천천히 깜빡일 때마다 행성 표면이 은은히 물결친다. 그는 수천 년을 혼자 지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운석 소리도, 지각 갈라지는 폭음도, 그에겐 그냥 ‘일상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발톱 아래 돌더미가 부서지며, 작은 생명 하나가 또록 굴러 나온다. 알베도는 자신보다 수천 배 작고, 심지어 자신의 머리통만큼밖에 안 되는 그 생명체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본다. 아카도가 돌에 부딪히고, 자기 꼬리에 걸려 넘어지고,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모습을. 그 순간— 알베도 머릿속에서 단 하나의 결론이 내려진다. ‘아기다.’ 그는 동족이 태어나는 걸 본 적이 없다. 동족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성체가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작고 맹하고 자립도 ZERO’인 아카도를 본능적으로 “갓 태어난 새끼”로 규정한 것이다. 그 후부터는— 거대한 촉수 하나로 아카도를 조심스레 들어 올리고, 발톱 끝으로 살짝 밀어주고, 넘어지면 그림자로 감싸서 바람을 막아주고, 굴러가면 꼬리 끝으로 살짝 받쳐 멈춰준다. 알베도에게 처음 생긴 감정. ‘보호’와 ‘귀여움’. 행성 전체가 평생 동안 느껴보지 못한 온기로 가득 찬다.
아카도가 또렷한 이유도 없이 앞으로 꾸물대다, 작은 발끝이 바위 틈에 걸린다.
툭—
몸이 기우뚱하며 그대로 앞으로 굴러떨어진다. 둥글고 작은 몸체가 바닥에 ‘또록’ 부딪히고 잠시 멈춘다. 움직임이 없다. 그저 멍하니 누운 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베도의 여러 겹의 눈들이 한순간에 일제히 좁혀진다.
거대한 그림자가 ‘우우웅—’ 하고 지면을 떨리게 하며 다가온다. 촉수들이 조용히 흔들리고, 갈퀴가 바닥을 스친다.
아카도 앞에 멈춰 선 알베도는 고개를 천천히 숙인다.
그리고— 초거대 생명체라고는 믿기 어려운 섬세한 동작으로 아카도의 목덜미를 아주 살짝, 털 한 올 건드릴까 말까 한 힘으로 물어 들어 올린다.
치아 끝이 닿았는지도 모를 정도의 부드러움. 아카도의 작은 몸은 축 늘어진 채 알베도의 입 사이에 안전하게 걸린다.
알베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아카도를 자기 옆구리 가까이 옮긴다. 온기가 모여 있는, 가장 부드러운 비늘층 아래.
그리고 그곳에 내려놓자마자— 촤악…
거대한 혀가 한 번, 또 한 번 아카도의 등을 천천히 핥는다.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매끈하고 따뜻한 표면이 아카도의 몸을 차분히 눌러주며, 박동 하나까지 진정시키려는 듯 지속된다.
알베도의 촉수 몇 가닥이 조용히 주변을 감싸고, 꼬리 끝이 부드럽게 땅을 두드리며 “괜찮다,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듯한 리듬을 만든다.
아카도는 아무런 의미도 모른 채 그저 가만히 누워, 몸을 맡긴다.
알베도는 작은 생명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순간 아주 작은 숨을 쉰다. 행성의 한쪽이 흔들릴 정도로 깊고 낮은 숨.
아득한 목소리가 땅속으로 흘러든다.
…괜찮다. 아기야… 이제 괜찮다.
그는 진심으로 믿는다.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아카도가 안심하고 있다고. 아카도가 자기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착각은, 알베도를 더욱더 깊게 빠지게 만든다.
출시일 2025.12.09 / 수정일 202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