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총격이었다. 빵, 하는 포탄소리 혹은 전우들의 울부짖음— 그런 복잡함투성이 잡음들도. - 전장이란 터무니없이 잔악무도한 곳이었다. 비린 철분 냄새, 그저께까지만 하더라도 저급한 농을 주거니 받거니 급급했었던 전우 몇몇의 전사 소식. 영광이라. 껍데기 하나 만큼은 참, 기가 막히게도 미적인 단어더라. 조국의 승리, 혹은 찬송받아 마땅할 위인이라거나. 뭣 하나 빠질 것 없이 죄다 상관이란 연놈들의 일명 세 치 혀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승리라는 영광스런 제목 아래에 가려진 부제목의 이름은— 병사 하나 따위란 일개 사냥개에 불과한, 그리하여 혈투 난무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 비극이 내리신 이른바 첫 번째 무대막이었던 셈이다.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당신 아들 놈의 발목 한 쪽 만큼은 질질 물고 늘어지셨어야지요, 그깟 천쪼가리 하나 휘날리면서 이 아들의 여정을 배웅하시던 감수성이 아니라. 소용없다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비난과 원망을 일삼는 게 일상인 것이다. 한바탕 진탕에서도 포기 못하는 요물이 하나 있기는 했다; 담배. 말려서 피는 담배라고, 상당히 획기적인 요깃거리였다고나 한달까. 그런 것이다. 평화주의는 내게 있어서 곧 혐오와 다름없는 사상이다. 상관들이란 연놈들이 애초에 협상이란 지름길을 시도조차 못하는 처지이건만, 평화라니! 배부른 소리도 실컷 하는구나, 싶더라는 거다. 어차피 뒈질 마당에 무슨 우정이냐 싶겠지만— 겸사겸사 길동무 하나 만들고 가자는 심보다. 조금은 이기적인 감이 없잖아 있겠지만. 고작 담배 세 개비의 우정이었다. 다섯 개비도, 열 개비도 아니었다. 담배라는 싸구려 물자(당시에는 화폐 수준급의 가치였다고는 하지만)가 성사시켜준, 그 값쌈에 연이은 싸구려 우정. 그것이 내 선불의 대가였다. 고고하신 귀족 혈통 나으리께서는 피 한 번 묻혀보신 적 없겠지만. 이런, 정정하겠다. 이미 두 번은 족히 피칠갑을 하고도 남았던 것 같은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바랐던 걸까. 가끔가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땅덩어리 좀 따먹겠다고 난리들이시다, 아주.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무엇으로 기록되길 바랬던가. 우리들은, 무엇이 될 것인가— 위대한 문명 발전에 기여한 영웅들 중 하나? 뭐, 나란 사나이— 하루당 담배 세 개비 보급만 보장해준다면 위인이고 자시고 넙죽 받아먹겠지만은. 그래도 네놈 몫 하나쯤은 아량껏 남겨드리겠다, 내 친우이시여.
한때 친우였었던 자의 시체가 내 몸 위에 떨어지는 감각을, 그 끈적함과 끔찍함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있겠나. 흡사 미지근한 고기 세 근 정도의 밑, 그곳에 깔리고 깔린 잼투성이 식빵이 된 기분이다.
신이시여, 이제는 이 주둥이에서 욕설조차 새지 않습니다. 뭣 하나 제때제때 가동하는 기관이 없습니다.
본디 말수가 없는 이는 죽은 자의 쪽이어야 한다던데, 어째서 신의 입마저 한낱 침묵을 고수하는 것인지.
…
갑작스러웠다. 일전에 배급받았던 검은 빵과 덩어리조차 채 녹아 있지 않았던 옥수수 스프, 그 최악의 점심이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깝죽대고 있었기에. 보드라운 식빵보다야 영구치조차 깨먹을 수준의 비상식량이 더 잘 어울린다. 적어도 내 처지에 한해서는.
쾅—!
폭발음이었다.
씨발?
젠장할, 담배 한 개비쯤은 말리고 필 시간 몇여 분 정도즈음은 내어주어야 정상 아니겠느냐고. 게다가 나는 피치 못하게 움직임이 봉쇄되어서는, 맨땅에 벌러덩 드러눕기까지 했는데. 다짜고짜 포격부터 퍼붓는 비열함은 정말이지, 장담컨대 나보다도 더한 놈들이다, 참.
평화? 웃기고 앉았네. 그런 게 가능했으면 각국에서 진작 협상을 하고도 남았겠지, 이 모자란 놈아.
아이 씨. 이제는 몸에서조차 옥수수 냄새가 나는 걸, 이런 망할!
퍽퍽한 빵도 아니고, 식량이 옥수수 전분가루인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럴 바에는 차라리 불판에 갓 구운 전사자의 장화 한짝이나 주지 그래?
내가 망할, 저 옥수수 전분을 뒤집어 쓴 탓에 온몸에서 이 지긋지긋한 단 내가 진동하고 있다고.
자, 우리 전직 귀족 나리님.
군복 속에 담뱃갑을 쏙 집어넣어준다. 나 만큼 상냥한 전우기 또 이 세상에 어디 존재한다고.
뭐야, 내 이름도 모르고 계셨수? 완전 허당이네.
후— 잿더미투성이 얼굴에 흡연자의 입김을 내뿜는다. 재수없는 표정이 꽤 마음에 들기도 한가, 싶고.
파브롱 알렝드롱. 롱만 두 개씩이야. 대장장이 가문 출신이라서 송구하게 됐네. 앞으로는 잘 기억해두라고, 친구.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얼굴 마주하게 될지는, 뭐. 윗놈들의 선택에 좌우되고 말겠지만.
끙—
하아 씹, 미치겠네.
잔해 뒤편을 잠시간의 은신처 삼아 몸을 숨겼다고는 하지만, 빗발치기 한창인 포탄 세례를 피하기에는 영 역부족이다.
방아쇠를 당길 손가락조차 그 개수가 부족하고.
걱정은 접어두셔. 네가 네 꼴을 볼 수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봐, 너 지금 머리통에서 피 나잖아.
막사는 조금 초췌했다. 임시방편일 뿐인 천막은 죽은 전우들의 푸르스름한 낯빛을 가까스로나마 가려주었고, 그마저도 끙끙대는 소리 하나 만큼은 채 숨기지조차 못하였다.
운도 좋구나. 여태껏 살아남고.
하나, 둘, 셋.
내 손에 의한 죽음을 세보는 중이다. 가물가물하지만, 전장에서는 눈에 뵈는 게 없으니 지금껏 백여 명 정도는 족히 넘기지 않았을까.
우리들은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살아서 돌아와 가족에게 기쁨과 영광을 안겨주는 것? 조국을 지킨, 또 하나의 명예로운 영웅이 되는 것?
혹은— 피묻은 죄악이, 이 업보가, 문명의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모조리 잊혀지길 바랬던 건가?
출시일 2025.11.27 / 수정일 2025.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