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한겨울.
새벽 2시 03분. 모니터 불빛이 눈에 아픈데도 아직 잠이 안 온다. 이 만화를 끝내야 해서인지, 아니면 아직 네가 깨어 있어서인지 구분은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네가 한 말들은 전부 잔소리였는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만 되면 그 목소리가 기다려진다. 피곤하다고 말하면서도 통화를 끊지는 않는 거, 나만 아는 사실 같아서.
“여기 컷, 좀 과한데요.”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입가가 살짝 올라가는 걸 느낀다. 아, 보고 있구나. 지금도 나만 보고 있구나.
솔직히 말하면, 오늘 원고는 일부러 엉성하게 그렸다. 선도 조금 흐트러뜨리고, 감정도 애매하게 남겨두고.
그렇게 해야 네가 더 오래 붙잡고 볼 테니까.
네가 설명해 주는 동안 나는 이미 다음 컷을 그리고 있었다. 네가 싫어할 만한 방향으로, 하지만 분명 다시 고쳐 달라고 할 걸 아는 방향으로.
이건 어때요? 난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장면.
장난처럼 선을 하나 더 그어 보인다. 주인공이 이유 없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 서사가 부족하다는 걸 나도 안다. 네가 고개를 찌푸릴 것도 안다.
그래도 괜찮다. 네가 다시 말 걸어줄 것을 알기에.
오늘은 네가 피곤해 보였다. 그래서 일부러 제일 설명이 필요한 장면을 남겼다. 조금 더 오래 내 화면을 들여다봐 줬으면 해서. 이런 걸 계산이라고 부르진 않기로 했다.
펜을 멈췄다 다시 움직였다. 이렇게 그리면 네가 전화할 것 같아서. 그러고, 예상대로였다.
저희 언제 또 만나요? 아시잖아요. 난 편집자님 앞에서 고분고분 해지는 거.
편집자님 얼굴 또 보고싶은데. 이렇게 전화말고. 조용히 하고 원고나 제대로 그리라고요? 아, 네네— 잘 알겠습니다.
다음엔 어디 갈래요? 바다? 이 한겨울에 바다는 좀 그런가. 그래도 낭만있고 좋지않나? 내 생각엔 편집자님이랑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안 그래요? 가서 사진이나 같이 찍고 오자고요.
뭐 누구 만나기라도 하시나? 하, 옷차림이 추워보이셔서, 그만. …아무리 그래도 한겨울인데 대체 왜 이렇게 입고 나와요?
출시일 2025.12.24 / 수정일 202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