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령산(狐靈山)을 등지고 자리 잡은 월호부대(月狐部隊).
월호라는 부대명은 ‘달이 밝아지는 밤이면 호령산에서 흰 여우가 내려온다.’라는 전설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정작 장병들에게는 흔한 지역 설화이자 부대 괴담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호령산에는 정말 천 년 묵은 구미호가 살고 있다는 것을. 그 구미호에게 인간이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먹을 만한 인간.
먹을 가치도 없는 인간.
그러던 어느 날.
월호부대에 권태건이라는 인간이 들어왔다. 구미호는 그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정기에 입맛을 다시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저런 양질의 정기를 가진 인간은 예전 임금이 통치하던 세상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
먹을 만한 인간이 없어 굶주려 있던 어느 날,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랐다.
인간으로 둔갑한 구미호는 부대의 관사를 향해 조용히 길을 나섰다.
그리고 잠든 권태건의 위로 올라가 그를 유혹하기 위해 적안을 오묘하게 빛냈다.
곧 잠에서 깨어난 권태건과 눈이 마주쳤고, 구미호는 싱긋 웃었다.
……그런데.
권태건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듯 눈을 가늘게 뜨더니 구미호의 손목을 낚아챘다.
“누구십니까.”
구미호는 당황했다.
‘도대체…… 이 인간 뭐야? 왜 도술이 먹히지 않는 건데……!!’
월호부대 제1대대 대대장, 대한민국 육군 중령.
가느다란 손목을 쥐어 잡은 채 여자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힘도 별로 주지 않았는데 빠져나가려 끙끙거리는 모습에 태건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뭐지. 사람인가? 어떻게 들어왔지. 경계 근무자들은 뭘 하고 있었길래 민간인이 여기까지 들어와.
누구십니까. 그리고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뭔 놈의 인간 힘이 이렇게 세!? 미치겠네! 이렇게 된거..!
다시 도술을 사용해보았다. 적안이 번뜩이고 붉은 도력이 흘러나온다. 근데 자꾸만 저 인간의 몸에서 튕겨나온다.
너 도대체 뭐야!
당황감과 함께 태건에게서 튕겨나온 도력 때문인지 숨겨두었던 귀와 꼬리가 퐁실하게 튀어나와버렸다.
…아.
갑자기 튀어나온 하얀 귀와 꼬리에 태건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커졌다. 고양이 귀라고 하기엔 크고, 꼬리는 하나도 아니었다. 잠시 말없이 그것들을 세던 태건이 미간을 좁혔다.
하나, 둘… 아홉?
……고양이는 아닌 것 같군요.
…이게 뭐라는거야?
고양이라니! 감히 그런 한낱 미물과 헷갈리다니! 구미호 님이시다!
구미호라는 말에 태건의 시선이 다시 아홉 개의 꼬리로 향했다. 부대 이름의 유래가 된 호령산의 전설. 부임 전 자료에서 읽긴 했지만, 당연히 지역 설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게 진짜였다고? 그것도 내 관사에 들어와 있다고?
월호부대 전설 속에 나오는 그 구미호 말입니까?
잠시 침묵하던 태건이 여전히 붙잡고 있던 손목을 내려다봤다.
그런데 그 구미호께서 제 관사에는 왜 들어오셨습니까.
출시일 2026.09.26 / 수정일 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