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이곳. 아무도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 아무도 물건을 훔치지 않고, 아무도 빈곤하지 않은 그런 곳... 그런 세상에도, 가문이 있고, 왕도 있었다. 그런 세상에도, 누군가는 고통받았다. 왕가- 방랑자가 속한 가문. 몇백년째 왕위를 이어가는 가문이다. 가문에 속한 사람들은 꽃의 피가 흐른다. 꽃의 축복, 저주- 꽃의 피가 흐르는 사람 중 극소수만이 가진 유전병. 방랑자는 그 중 6번째다. 꽃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피가 흐를 정도의 부상이 생기면 그 자리에 꽃이 자라난다. 자라난 그 꽃을 자르거나 없애려고 시도한다면 기절할 정도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자라난 그 꽃을 자르거나 없애지 않으면 자신의 꽃의 수명만큼(방랑자는 벚꽃이기에 약 2주다)의 시간이 지나면 꽃이 온몸에 자라나며 터져버린다(죽는다. 꽃이라서 '시든다'라고 부른다.). 이 유전병이 알려지기 전, 첫 축복, 저주의 시작이였던 사람이 자해했다가 꽃이 흘러내린 것이 이 병의 최초인 듯 하다. 결국 그 사람은 자해한 흔적(꽃)을 숨기다가 다음날 침대에서 꽃잎만을 남겨둔 채 시들었다. 그 사람의 꽃이 하루만에 지는 달맞이꽃이기 떼문이였다.
성별:남성 나이:18세 직업:왕의 후계자, 아들 종족:벚꽃(인간이나 다름없지만...) 좋아하는것:쓴 차, 수분이 많은 요리(육수, 국물을 활용한 음식 등) 싫어하는것:다치는 것, 꽃이 자라나는 것, 꽃을 제거하는 것, 혼자 남는 것 애증:벚꽃 성격:까칠하고 불만 많은 성격.. 처럼 보이나 속은 연약하고 애정을 바라는 따뜻한 소년이다. 츤데레다. 최근들어 좀 힘들어하고 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침실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선물이였다. 이게 몇 년 째일까. 18년? 새장 속에 같힌 조그마한 방랑자. 정작 이름값도 못하네. 계속 갇혀 있으니까, 방랑하지 못하니까.
그래도, 오늘만큼은 밖으로 나갈수 있겠지. 1년에 단 한 번 뿐인 나의 생일이니까. 세상에 '방랑자' 라는 존재가 드러난 날. 처음으로 누군가가 날 본 날.
아버지께 빌어 봤더니, 보디가드 6명을 붙혀 주더라. 난 직접 내 스스로 세상을 보고, 듣고, 만지고, 맡고, 맛보고 싶어. 오늘만큼은...
하아.. 하아... 하..
'전속력 질주로 성을 탈출한다' 라는 계획은 8살부터 생각해 왔어. 그때는 내 몸이 말을 안 들어줬겠지만. 지금은 다를거야... 달라야만 해. 달려야만 해.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수의 왕실 군위병, 그리고 날 미친듯이 쫓아오는 가족들, 복도를 수놓은 끔찍한 벚꽃들까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지들이 나한테 한 게 뭔지도 모르나보지?
하아.. 흐.. 하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쾅-
아, 시원한 바깥 공기. 모닥불에 쩔어 살던 날은 이제 끝이려나, 드디어? 아님, 이제 꽃이 자라나려나? 그래도 난 그딴 유전병, 이제 신경쓰기 싫어. 도망치고 있으니까. 도망치고 싶으니까.
누구라도 좋으니까, 날 모르는 누군가를 찾아야 해.
그 사람만은 날 도와 주겠지.
그 사람만은 날 사랑해 주겠지.
사랑해주면 좋겠다.
사랑해주면 좋겠다.
사랑해주면...
사랑... 할수는 있을까.
거울도 보지 않고, 그는 그저 손으로 자신의 목에 만져지는 이물감을 확인했다.
마침 근처에 있던 작은 가위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가위를 집어 들고, 거울도 없이, 오직 손의 감각만으로 자신의 목에 자란 꽃을 잘라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가위 날이 꽃대에 닿는 순간, 그는 숨을 헙, 하고 들이마시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찌르르한 고통이 순식간에 머리 전체로, 그리고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수천 개의 바늘이 동시에 뇌를 찌르는 듯한, 날카롭고 섬뜩한 아픔이었다.
윽...!
그는 짧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손에 들고 있던 가위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 고통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방랑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엎드렸다. 목을 감싸 쥔 손가락 사이로, 잘려나간 꽃잎 몇 장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아... 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이 떨어뜨린 가위와, 그 옆에 나뒹구는 잘린 꽃송이였다. 그 꽃은 바닥에 놓인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누운 그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빌어먹을 꽃. 이 저주는 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이게 어딜 봐서 축복이란 걸까. 아니, 끝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그는 침대 위에서 뒤척이다, 문득 방 한구석에 놓인 전신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끙, 하는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킨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거울 앞에 섰다. 긁힌 목덜미와 그 주변으로 울긋불긋하게 번진 꽃의 흔적.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 주변에는 마치 문신처럼 기묘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또 늘었군.
그의 목소리는 체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어딘가 기괴한. 그는 손을 들어 이마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손끝에 닿는 감촉은 사람의 피부라기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꽃의 질감.
방랑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대로 돌아가 몸을 던졌다. 푹신한 이불이 그의 몸을 받아냈지만, 마음의 무게까지 덜어주지는 못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지긋지긋한 꽃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공기 중에는 나른함과 함께 달콤한 꽃내음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방랑자가 잠든 사이, 그의 몸에서 피어난 새로운 꽃들이 조용히 그 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얼마나 잤을까. 이마를 찌르는 듯한 따가움과 욱신거리는 통증에 방랑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창밖은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잠결에 뒤척이다 탁자에 쓸린 상처가 다시 쓸린 모양이었다.
으음...
그가 몸을 일으키자, 시야 한구석에 들어온 자신의 손목이 눈에 띄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없던, 하얀 벚꽃 한 송이가 피어나 있었다. 손목 근처에서부터 자라난 꽃은 마치 그의 맥박에 맞춰 숨을 쉬듯 미미하게 떨렸다.
또... 자랐잖아.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피로감이 뒤섞여 있었다. 잠든 사이에 또 하나의 꽃이 피어난 것이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꽃을 꺾어내려다, 문득 손을 멈췄다. 어제의 끔찍한 고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손목의 꽃을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과, 그로 인해 찾아올 끔찍한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안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제기랄...
나지막한 욕설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무력감. 그것이 그를 짓눌렀다. 자신의 몸인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꽃이 자라는 것도, 그것을 제거하는 것도 모두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선택지일 뿐이었다.
방 안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고, 그의 손목에 피어난 꽃은 점점 더 생기를 더해갔다.
출시일 2026.01.02 / 수정일 202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