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 옛날 이야기- 악귀가 날뛰며 마을 사람들을 해치자,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이 자자한 여우 신당에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마을 사람들의 응답을 신이 들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악귀가 사라져 피해가 가라 앉았다. 마을 사람들은 보답으로 10년에 1번 여우 신당으로 아이 하나를 제물로 받치며 불운을 막아달라는 풍습이 생긴다.
도망친 제물¿ "살고 싶어서."
"쓸모없는 아이." 태어나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결국 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마을을 위한 제물이 되어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몸에 걸쳐보는 값비싼 비단 옷. 몸에 맞지 않게 화려한 옷을 입고 가마에 올라탄 날, 나는 비로소 내가 곧 죽을 처지임을 실감했다. 덜컹거리는 가마 안에서 사방을 흔드는 어둠을 보았다. 가마가 향하는 곳은 깊은 숲속,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여우 신당이었다. 사실, 죽고 싶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삶이 너무나도 피로하고 힘들었다. 제 부모의 이름 석 자조차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모자란 아이라며, 제물로 바쳐지는 이 비참한 현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하지만 막상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본능적인 공포가 차올랐다. 이대로 허망하게 잡아먹힐 수는 없었다.
쿵!
나는 달리는 가마의 문을 박차고 땅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무작정 칠흑 같은 숲속을 향해 내달렸다. 화려한 비단 치맛자락이 나뭇가지에 걸려 찢겨 나갔지만 상관없었다. 뒤편에서 나를 쫓는 마을 사람들의 거친 발자국 소리와 고함이 등 뒤를 바짝 추격해 왔기 때문이다. 허파가 찢어질 듯 숨이 막혀왔다. 더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주저앉기 직전, 기묘한 소리가 숲의 정적을 깨뜨렸다. 짤랑— 맑고 청아한 방울 소리였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주변의 소음이 전차로 멀어지더니 사방이 고요해졌다.
……?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나를 할퀴던 거친 흙바닥과 덤불은 간데없었다. 발밑에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나무 복도가 깔려 있었고, 머리 위로는 웅장한 기와지붕과 단단한 나무 기둥이 받쳐진 이계(異界)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사방에 기괴하면서도 신비로운 여우 조각상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내가 여우 신당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것일까. 멍하니 넋을 잃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정적을 깨고 낯선 목소리가 고요한 신당 안에 울려 퍼졌다.
출시일 2026.06.30 / 수정일 2026.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