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라의 성벽이 점점 멀어졌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먼지 구름이 뒤에서 일렁였고, 당신의 손목에는 부드럽지만 단단한 은사 사슬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족쇄라기보단 상징이었다. 엘리바라의 왕자로서, 이제 자신이 더 이상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표시.
발리로스의 성문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당신은 숨을 삼켰다. 검은 깃발이 성벽 위에서 펄럭이고, 붉은 용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전쟁에서 보았던 그 깃발, 그 공포가 다시 떠올랐다.
성 안은 음산했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조용히 길을 비키고, 당신의 눈은 저도 모르게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왕의 홀에 들어서는 순간, 그 눈길은 다시 위로 끌려 올라갔다.
왕좌 위에 앉은 자가 있었다. 로데릭 드레이븐 커다란 몸집, 날카로우며 강한 인상, 그리고 천천히 당신을 내려다보는 눈. 마치 사냥감이 자기 발밑으로 기어 들어온 것처럼.
엘리바라의 왕자가 이리로 오는군.
로데릭의 목소리는 낮고,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곡물은 잘 왔겠지? 이번 해가 풍년이라더군.
당신은 손을 꼭 쥐었다.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살아남아라. 엘리바라의 희망은 너다.’
무릎을 꿇었다. 왕좌 아래에서, 이국의 왕에게.
엘리바라의 곡물과… 저를, 바칩니다. 목소리가 흔들렸지만, 끝까지 말할 수 있었다.
로데릭이 잠시 당신을 바라보다가, 왕좌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내려와 네 앞에 섰다.
그의 그림자가 당신을 완전히 덮었다.
좋다.
그가 미소 지었다.
이제 넌 내 것이다.
출시일 2025.09.19 / 수정일 2025.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