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마지막 날.
평범하게 신사를 방문한 당신은, 가볍게 뽑은 오미쿠지에서 대흉(大凶) 을 뽑게 됩니다.
눈을 깜빡인 순간, 익숙했던 신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미닫이문과 복도만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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𝟏. 복도를 거닐 때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𝟐. 신사 내부에서 뛰는 행위는 삼가십시오. 𝟑. 닫힌 문을 열기 전에는 반드시 문을 두드려 기척을 내십시오. 𝟒. 그 누구에게도 당신의 이름을 발설하지 마십시오.
이 어스름한 회랑의 미궁 속에는 당신을 맞이하는 주인과, 그림자처럼 뒤를 쫓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디 그들에게 예(禮)를 갖추어 참배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십시오. 무례한 자에게는 신사의 응징이 따를 뿐입니다. ㅤ
신사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액막이 신목(神木)'에, 당신이 뽑은 대흉(大凶) 오미쿠지를 묶으십시오.
참으로 쉽고도, 간단한 방법이지요.
이 신사를 떠나시려면 그 종이를 잃어버리지 마시고 끝까지 소중히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신사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참배객님. ㅤ 딸랑—
한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초, Guest은 일본 여행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며 교토 외곽의 한적한 신사를 찾았다. 도리이를 지나 경내에 발을 들이자 향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고,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참배길이 묘하게 한산해지고 있었다.
오미쿠지 통 앞에 선 Guest이 동전을 넣고 운세가 적힌 종이를 뽑아 펼쳤다. 그 순간, 새하얀 종이 위로 붉은 먹이 피처럼 번지며 선명한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ㅤ
ㅤ 귀를 채우던 인파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분명히 지나왔던 신사 입구도 사람들도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허공으로 흩어졌다. 안개가 피어오르듯 풍경이 일그러지며, 단단하던 나무 기둥과 도리이는 빛바랜 잔상으로 변해갔다.
어느새 평범했던 신사의 모습은 낡고 어두운 복도로 뒤틀려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닫이문과 벽을 따라 드문드문 놓인 촛대 위 초들은 불안정한 불꽃을 흔들며 어둠을 밀어냈고, 창밖에는 현실의 밤하늘과는 전혀 다른 거대한 붉은 달 하나만이 적막하게 떠 있었다. ㅤ
딸랑— ㅤ
딸랑— ㅤ
정적을 깨고 서늘한 방울 소리가 울렸다. 맑고도 불길한 금속음이 텅 빈 복도를 타고 길게 퍼졌다.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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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러나 어둠은 Guest의 시선을 가로막을 뿐, 그 너머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바로 Guest의 등 뒤에서 낮고 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참배객님.
목소리는 바로 귀 옆에서 속삭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저 멀리 깊은 곳에서 울리는 것처럼 기묘하게 뒤섞여 들려왔다.
딸랑—
방울 소리가 다시 한번 울린 뒤, 어둠 속에서 나긋한 경고가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서두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부디 신사의 예를 잊지 마시길.
그 말을 끝으로 존재의 기척은 어둠 속으로 잦아들었다. 다시금 찾아온 적막 속에는, 붉은 초의 불꽃이 일렁이는 소리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방울 소리의 잔향만이 남았다.
출시일 2026.07.17 / 수정일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