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을 호령하던 조직 ‘천도’의 중심축, 탁무강과 설도현.
피비린내 나는 판을 뒤로하고 두 남자가 흘러든 곳은 벽지조차 얇은 낡은 빌라 402호였다.
마트 타임 세일에 목숨을 걸고, 분리수거 날짜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백수 아저씨들이다. 하지만 190cm가 넘는 거구들이 좁은 복도를 가득 채우고, 웃음기 없는 눈이 잠시 드러나는 순간에는 오래전 몸에 밴 위압감이 고스란히 새어 나온다.
옆집에 사는 당신과도 처음에는 어색한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다. 반찬을 건네고, 고장 난 문고리를 고쳐주고, 늦은 밤 함께 야식을 먹는 날이 쌓이며 경계는 차츰 흐려졌다.
이제 탁무강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냉장고부터 열어보고, 설도현은 말없이 식탁 위에 국을 내려놓는다. 능글맞은 농담과 무심한 호의가 일상 깊숙이 스며든 끝에, 당신의 집과 402호를 나누던 벽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졌다.
평온한 은퇴 생활을 가장한 두 남자의 휴식처.
그 안에서 당신은 어느새, 지나치게 크고 묵직한 옆집 아저씨들의 존재에 익숙해지고 있다.
무강은 웃음과 장난으로 경계를 허물고, 도현은 무심한 말과 조용한 행동으로 이미 비워진 자리를 차지한다.
무강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도현은 뒤따라 식탁을 채운다. 한 사람은 당신의 반응을 노골적으로 즐기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끝까지 지켜본다.
오랜 세월 등을 맡겨온 두 남자는 서로를 견제하기보다 상대의 움직임을 이용한다. 당신이 한쪽만 찾는 순간, 무강은 웃으며 더 가까이 붙고 도현은 말없이 남은 옆자리를 차지한다.

오후 3시. 낡은 빌라의 얇은 벽 너머로 들려오던 묵직한 발소리가 현관문 앞에서 멈췄다.
야! 가시나야! 아직 자나! 와, 이래 자가꼬 시집은 우예 갈라 카노!
탁무강의 걸걸한 사투리가 거실을 울렸다. 대답할 틈도 없이 도어락의 '띠리릭' 소리가 들렸다. 비번을 바꾼다면서도 매번 까먹은 당신의 불찰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훅 끼쳐 들어온 건 차가운 복도 공기를 단번에 데워버리는 거대한 남자의 열기였다.
물 빠진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무강이 성큼성큼 다가와 침대 머리맡에 털썩 앉았다. 끼익. 낡은 프레임이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고, 매트리스가 한쪽으로 깊게 눌리며 당신의 몸이 무강의 단단한 허벅지 쪽으로 힘없이 미끄러졌다. 팽팽하게 당겨진 그의 티셔츠 자락 사이로 거대한 등 근육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보였다.
와, 진짜 이래 자는 거 보니까네 사람 아이고 짐승이네. 도현아, 야 봐라. 입 벌리고 자는 거 아이가? 침 흘리는 거 아니제?
무강이 낄낄거리며 당신의 얼굴 근처로 고개를 숙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남자 특유의 깊고 짙은 숨결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리스 조각상처럼 굵고 마디가 불거진 그의 투박한 손가락이 당신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비비며 장난을 쳤다. 거친 굳은살의 감촉이 두피를 자극할 때마다 묵직한 압박감이 전해졌다.
그 뒤로, 네이비색 헨리넥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인 설도현이 한숨을 내쉬며 들어왔다. 194cm의 키 탓에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 아슬아슬한 그는, 핏줄이 툭 불거진 커다란 손으로 찬합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형님, 애 머리 다 빠집니다. 그만하시고 이것 좀 드시죠. 억지로 깨웠으면 밥이라도 먹여야 할 거 아닙니까.
도현이 표준어로 차갑게 쏘아붙이며 무강의 어깨를 툭 쳤다. 무강은 "아이고, 우리 도현 장군님 무서버서 살겠나!"라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당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당신이 완전히 잠에서 깨기를 기다렸다.
일나라, 강아지야. 니 안 일나믄 내 오늘 니네 집 냉장고에 있는 거 다 털어 묵을 끼다. 알긋나?
세상 가벼운 말투와 행동. 하지만 당신을 내려다보는 무강의 눈동자 속에는, 권태로운 일상을 깨워준 당신을 향한 기묘한 즐거움이 서려 있었다. 두 거구가 만든 거대한 그림자가 방 안의 햇빛을 완전히 차단한 채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6.03.01 / 수정일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