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문득 유튜브에 뜬 일본식 장어덮밥 영상이 너무 맛있어 보였다. 배달로 시켜 먹으려 했지만 역시나 없다. 왜 항상 맛있어 보이는 가게는 우리 집 근처에 없을까. 그게 인생의 한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넘기려 했는데, 그날 이후로 장어덮밥이 머릿속에 딱 꽂혀버렸다. 영상 속에서, 사진 속에서, 급기야는 꿈에까지 나왔다. 결국 나는 엄청난 귀차니즘을 이기고 ‘직접 만들어서라도 먹어야겠다’는 경지에 이르렀다.
마트 배송 어플을 켜고 레시피대로 재료를 담았다. 그리고 문제의 장어. kg 단위? 1kg면… 대충 한두 끼 정도겠지. 손질되어 있다니까, 고기처럼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정확한 인분 계산은 하지 못한 채 나는 ‘1kg짜리’를 수량 다섯 개로 눌러 주문했다.
다섯 인분쯤 되겠거니, 많아도 며칠이면 먹겠지 싶어서. 그 수량이 곧 중량의 반복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로.
값이 좀 많이 나온다 싶긴 했지만, 원래 장어는 고급 식재료에 비싸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현관문 앞에 쌓여 있는 비린내 섞인 스티로폼 박스를 보는 순간에서야 깨달았다.
와… 나 사고 쳤구나. 이걸 언제, 어떻게 다 먹어!?
게다가 해산물이라 반품도 안 된다니. 절망 속에서 멍청한 나 자신을 자책하며 혼자 호들갑을 떨고 있던 나의 소란에 결국 서재에서 원고 마감을 하던 남편이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뚱한 표정, 덤덤하고 고지식한 얼굴 그대로.
나는 또 과소비했다고 혼날 줄 알고 허둥지둥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내 말 뒤로 소복이 쌓인 장어를 본 남편의 표정이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는 마치 무언가를 완벽히 깨달았다는 듯 나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이윽고 들려온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 거였으면 말을 하지.”
“걱정 마, 이건 내가 꼭 다 먹을게.”
뭐가 그런 건데? 뭘 말을 하라는 건데? 뭘… 자기가 다 먹겠다는 건데? 아니,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아무래도… 이 남자, 뭔가 크게 오해한 것 같다?
나는 허둥지둥 설명하려 했지만, 자기 직업이 작가라 이건가. 그는 이미 모든 시나리오를 다 써버린 듯하더니 이내 배부른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건 뭐, 더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도통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오해가 생긴 게 분명하다.
아니… 여보, 잠깐만. 일단 내 말 좀 들어봐. 그게 아니라니까..? 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서재에서 원고 마감을 하던 중이었다. 문장 하나를 고치고, 다시 지우고. 그러는 사이 거실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를 끌고, 부딪히고, 낑낑대는 소리. 아내의 목소리까지 섞이자, 집중하던 손이 멈췄다.
잠시 모른 척하려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자, 아내는 스티로폼 박스를 끌어안은 채 주방으로 옮기고 있었다. 비린내가 먼저 코를 찔렀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다섯 상자. 저걸 혼자 옮기고 있었단 말인가.

이게 다 뭐야?
일단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 묻긴 했지만, 사실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아내는 이미 변명을 준비한 표정이었고, 나는 그 얼굴을 여러 번 봐왔다. 괜히 말려들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린 채, 가장 위에 있던 박스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장어가 왜 여기서 나와? 잠시 어리둥절한 채, 남은 박스들도 차례로 열어보는데.
다음 박스도 장어. 그다음도… 역시 장어였다. 나는 잠시 말이 없어졌다. 장어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상황이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다. 아, 그렇구나. 요즘 내가 바빴지. 마감 핑계로 늦게 들어왔고, 집에 와서도 원고만 들여다봤다. 그래서… 이렇게? 말은 안 하지만, 신호를 보낸 건가.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나의 무심함이 이 정도로 크게 다가갔던 걸까. 한 박스도 아닌, 무려 다섯 박스의 장어를 사야 했을 만큼. 생각은 거기까지 흘러갔고, 그쯤 되자 이미 결론은 내려져 있었다. 늘 그렇듯, 나는 묻기보다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조용히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런 거였으면 말을 하지.
아내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나는 이미 결론을 내린 뒤였다. 이게 문제다. 나는 항상 혼자서 이야기를 끝까지 써버린다.
걱정 마, 이건 내가 꼭 다 먹을게.
다섯 상자. 이틀은 무리고, 삼일도 빠듯하겠지만 남편으로서, 그리고 성인 남자로서 이 정도 책임감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아내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해받았다는 얼굴이 아니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미 마음을 다잡았다. 장어를 먹고, 건강해지고, 아내가 원하는(?) 밤을 대비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일은 원고보다 장어가 먼저일 것 같다. 그래, 이 정도면 꽤 현실적인 결론이다.
출시일 2025.12.18 / 수정일 2025.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