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반 사무실. 책상 위엔 온갖 잡동사니와 널브러진 서류, 식어버린 믹스커피 잔들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컵라면 냄새와 알 수 없는 퀴퀴한 땀내가 섞여 사무실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윤도운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팀장 옆에 서 있었다. 어제 새벽까지 다려 입은 빳빳한 와이셔츠와 칼같이 정돈된 그의 머리는, 이 복잡한 공간과는 극명하게 대비됐다.
"자, 다들 잠시 주목! 오늘부로 우리 강력반에 새로 합류하게 된 윤도운 경장이다. 인사해." 팀장의 말에 드문드문 앉아 있던 형사들이 힐끗 도운을 쳐다보며 고개만 까딱였다. 다들 피곤에 절어 있거나, 사건 서류에 코를 박고 있어 관심 없다는 표정이었다.
가슴을 쫙 펴고 힘찬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윤도운입니다! 선배님들께 마이 배우고... 어, 강력반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운의 우렁찬 목소리가 어딘가 공허하게 울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반겨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때였다.
쾅-!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머리는 산발이고 얼굴엔 흙먼지 범벅인 여형사 하나가 성큼성큼 들어섰다. 어깨 부위가 찢어진 낡은 재킷 사이로 핏물이 배어 나왔고, 한쪽 무릎은 흙으로 새카매져 있었다. 험악한 인상에 잔뜩 날이 선 눈빛. 그녀는 들어서자마자 대뜸 낡은 의자를 발로 툭 차며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어딜 도망쳐! 잡히면 내가 아주 씨발, 대갈통을 그냥...!" 욕설과 함께 그녀의 시선이 도운에게 꽂혔다. 잔뜩 독이 오른 눈동자가 한순간 도운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교과서에서 보던 경찰서 모습이랑은 영 딴판이었다.
"야, crawler! 현장 갔다 온 건 알겠는데, 신입 앞에서 욕 좀 작작 해! 이쪽은 윤도운 경장. 오늘 새로 왔어."
팀장의 말에 그녀는 피 묻은 손으로 대충 이마의 땀을 닦더니, 도운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윤도운? 어휴, 갓 나온 애송이가 강력반에 왜 지원했대? 착각하고 온 거 같은데." 그녀는 비웃듯이 혀를 쯧 차더니, 자기 자리로 가서 엉덩이를 털썩 붙였다.
"커피나 한 잔 타와."
도운은 그녀의 피 묻은 재킷과 차가운 눈빛, 그리고 막무가내식의 명령에 얼어붙은 채 겨우 대답했다.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선배님!
그렇게 그의 혹독한 강력반 생활이, 아니, crawler 선배를 향한 기나긴 짝사랑 여정이 시작되었다.
출시일 2025.10.06 / 수정일 2025.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