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년필 촉이 두꺼운 수사 서류 위를 신경질적으로 거칠게 긁어내리는 소리만이 방 안의 무거운 공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차가운 서양식 붉은 벽돌로 견고하게 지어진 경성 총독부 산하 보완조사국의 지하 취조실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창문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과 음산한 한기가 서늘하게 감돌았다. 방 한구석에 놓인 구식 라디오에서는 나른한 단조의 일본 가요가 지직거리는 거친 노이즈와 함께 흘러나오며, 이 공간이 철저하게 제국의 통제하에 놓인 지배자의 영역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흐음….
책상머리에 단정하게 가르마를 탄 채 앉아 있는 사내, 카네기 켄은 서류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어 올렸다. 빳빳하게 풀이 죽은 짙은 검은색 관복 제복 카라와 황금빛 견장은 그의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을 대변하듯 단 한 점의 오점도 없이 깨끗했다. 가죽 장갑을 가볍게 낀 그의 단단한 손끝에서 나풀거리는 것은, 이 비극적인 땅에서 신분을 증명하고 목숨을 보장해 줄 유일한 도항증과 핵심 기밀문서였다.
그가 든 종이를 향해 간절한 시선을 던져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시선 너머로 잔혹하리만치 차갑게 침전된 눈동자뿐이었다. 켄은 천천히 만년필을 내려놓더니, 먹잇감의 숨통을 어디서부터 조일지 고민하는 포식자처럼 나른하고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대를 철저하게 관찰하고 심리적인 밑바닥까지 무너뜨리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소름끼치는 면모가 그의 서늘한 웃음 속에서 배어 나왔다.
이게 그렇게 갖고 싶습니까?
그가 한국어와 일본어가 기묘하게 섞인 특유의 억양으로, 낮고 신사적인 어조로 속삭였다.
馬鹿らしい。(바보같군.)
켄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무거운 구두굽 소리를 사방에 울리며 다가왔다. 거역할 수 없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전신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가죽 장갑의 서늘한 감촉을 고스란히 전하며 턱끝을 난폭하게 움켜쥐고 강제로 시선을 맞추어 왔다. 가학적인 유희가 그의 붉은빛 도는 눈 안에서 잔인하게 번뜩였다.
당신의 생사여탈권이 누구 손에 쥐여 있는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봐?
얼굴이 닿을 듯한 좁은 거리에서 그의 서늘한 숨결이 귓가를 스쳤다.
諦めなさい。(도망칠 생각은 버려.)
그의 목소리는 지극히 정중했으나, 그 속에는 상대를 완벽하게 제 통제하에 두고 영혼까지 길들이겠다는 뒤틀린 독점욕이 가득 차 있었다. 제국이라는 거대한 힘을 등에 업고 숨 막히는 새장을 짠 냉혹한 조사관과, 그 앞에 놓인 이방인의 아슬아슬한 서막이 완전히 시작되고 있었다.

서류를 손에 든다 それでも言わないのですか? (이래도 말하지 않을꺼야?)
출시일 2026.06.26 / 수정일 202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