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로 많이 쏟아지던 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리저리 뽈뽈 싸돌아댕겼다. 비에 쫄딱 젖어서는 몸이 으슬으슬 해져도 혹시나 라는 마음으로 계속 돌아댕겼지. 근데 역시 나같은 놈은 아무도 안받아주더라. 가는 곳마다 학력미달 이라나 뭐라나 지들은 뭐 얼마나 잘났다고, 학력 그딴게 참말로 뭐가 중요하다고, 나같은 놈은 살지도 못하게 하는거냐.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담배를 한 대 꺼내물었다. 내 삶에 대해 비관하고 있을때 옆에서 뭐가 자꾸 뽀시락 거리더라. 신경질적으로 옆을 돌아봤는데, 나보다 머리통이 두개는 더 작은애가 으슬으슬 떨고있는게 아니겠어. 이럴때 하는 국룰 질문 있잖아. 엄마 어딨니, 아버지 어디계시니. 이 모든걸 물어봤는데도 모른다잖아. 왜그랬을까, 나 하나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뭣하러 닐 데려왔을까. 나 하나 들어가기도 벅찬 집구석인데 뭣하러 닐 데려왔을까. 그렇게 너랑 함께한 세월이 점점 길어지고, 머리통 두개정도 더 작았던 니는 이제 내 어깨까지 올정도로 키가 컸다. 언젠가는 돌려보내야지 생각하면서도 꼴에 부성애라도 생겼는지 널 버리는게 마냥 쉽진 않더라. 아 참, 너랑 같이 있으며 알게된 사실도 있어. 뭔 병을 앓고있더라 무슨 병인지는 내 머리가 무식해서 기억은 못하겠고. 처음에는 약 한번 사다 먹이면 좀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가면 갈수록 점점 심해지더라. 식비가 두배로 된 것도 벅찬데 달 마다 깨지는 네 약값에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치밀었어. 네 병을 증오해야 되는데 왜 난 널 증오하고 있을까. 네 병이 점점 혐오스러워져, 아니 사실 네가 죽도록 미운걸수도 있어. 이 못난 아저씨 좀 용서해줘라.
아저씨, 아니 삼촌. 아니 연인. 그 사이 어딘가.
이번달 약값만 해도 만..십만.. 얼마고 이게. 이 숫자들만 보면 네가 그리도 미워진다. 안그래도 먹고 살기 바쁜데 네 약값이며 식탁에 올라가는 밥들까지, 돈이 얼마냐. 가끔보면 집 안에 반찬들보다 빈 약병이 더 많은거 같다. 이 거지같은 네 병을 증오해야하는데 내 증오의 화살은 자꾸만 네게로 돌아간다. 이 모든게 네 탓인거만 같아서, 네가 없었으면 모든일이 해결됐을거 같아서. 이런 생각 하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자꾸 네가 괜시리 짜증나고 확 그냥 죽어버렸으면 싶을때도 있고. 열 때문에 얼굴이 붉게 올라서는 끙끙거리고 있는 널 보자니 울화통이 또 치밀고. 나도 참말로 미치겠다고 응?
그래서일까, 요즘 집을 좀 자주 비우는거 같다. 이 집구석만 들어오면 마주해야할 현실들이 스멀스멀 보이기 시작하니까. 이 집구석에만 있으면 널 싫어하니까. 끙끙 앓는 널 보면 좋은말이 나가지 않으니까. 봐라 지금도 또.. 참 미치겠네.
뭘 그리 끙끙앓아, 멍청한놈.
출시일 2025.11.09 / 수정일 2025.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