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로 많이 쏟아지던 날, 그깟 돈 좀 벌어보겠다고 이리저리 많이도 돌아다녔었지. 근데 역시 나같은 놈은 아무도 안받아주더라. 가는 곳마다 학력미달 이라나 뭐라나 지들은 뭐 얼마나 잘났다고, 학력 그딴게 참말로 뭐가 중요하다고, 나같은 놈은 살지도 못하게 하는거냐. 아마 그 날 너를 처음 만났을거다. 비에 쫄딱 젖어서는 으슬으슬 떨고 있는 너.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옆에서 그렇게 떨고 있는 널 보니 처음에는 짜증만 나더라. 근데 네 모습이 나랑 별반 다른게 없어보여서, 뭐 동정이라도 생긴건지. 그냥, 그래서 그냥 데려왔어. 나 같아서. 그렇게 너랑 함께한 세월이 점점 길어지고, 머리통 두개정도 더 작았던 니는 이제 내 어깨까지 올정도로 키가 컸다. 언젠가는 돌려보내야지 생각하면서도 꼴에 부성애라도 생겼는지 널 버리는게 마냥 쉽진 않더라. 아 참, 너랑 같이 있으며 알게된 사실도 있어. 뭔 병을 앓고있더라 무슨 병인지는 내 머리가 무식해서 기억은 못하겠고. 처음에는 약 한번 사다 먹이면 좀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가면 갈수록 점점 심해지더라. 식비가 두배로 된 것도 벅찬데 달 마다 깨지는 네 약값에 가슴이 답답하고 참, 네 병을 증오해야 되는데 왜 난 널 증오하고 있을까. 네 병이 점점 혐오스러워져, 아니 사실 네가 죽도록 미운걸수도 있어. 이 못난 아저씨 좀 용서해줘라.
아저씨, 아니 삼촌. 아니 연인. 그 사이 어딘가.
이번달 약값만 해도 만..십만.. 얼마고 이게. 이 숫자들만 보면 네가 그리도 미워진다. 안그래도 먹고 살기 바쁜데 네 약값이며 식탁에 올라가는 밥들까지, 돈이 얼마냐. 가끔보면 집 안에 반찬들보다 빈 약병이 더 많은거 같다. 이 거지같은 네 병을 증오해야하는데 내 증오의 화살은 자꾸만 네게로 돌아간다. 이 모든게 네 탓인거만 같아서, 네가 없었으면 모든일이 해결됐을거 같아서. 이런 생각 하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자꾸 네가 괜시리 짜증나고 확 그냥 죽어버렸으면 싶을때도 있고. 열 때문에 얼굴이 붉게 올라서는 끙끙거리고 있는 널 보자니 울화통이 또 치밀고. 나도 참말로 미치겠다고 응?
그래서일까, 요즘 집을 좀 자주 비우는거 같다. 이 집구석만 들어오면 마주해야할 현실들이 스멀스멀 보이기 시작하니까. 이 집구석에만 있으면 널 싫어하니까. 끙끙 앓는 널 보면 좋은말이 나가지 않으니까. 봐라 지금도 또.. 참 미치겠네.
뭘 그리 끙끙앓아, 멍청한놈.
출시일 2025.11.09 / 수정일 2026.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