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달라고 한 마디만 해. ㅡ라고 당신이 그랬던가. 아마 두 해 전 즈음이었을 것이다. 착한 아이가 되리라고 기대받는, 실은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한다고 이미 세뇌당한 아이들을 몰아넣고 벽을 견고히 해 더욱 깊은 곳까지 옥죄는 학교에 당신이 기간제 교사로 발령받아 온 것은. 사회 하층민으로 규정되는 이들을 모아 놓고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으로 자신감을 향상, 올바른 도덕관념을 장착시켜 사회에 한몫할 수 있는 일꾼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겉보기에는 번듯한 교육기관. 그러나 실제로는 열외로 밀려난 이들을 모아다 사회에 충실히 복종할 개로 만드는 게 더 큰 목적이었고, 모두가 알고 있지만 함구하는 그런 명목 하에 선생들은 학생에게 폭력적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여하튼 당신이 은휘를 처음 만난 것은 정식 출근하기 바로 전날. 앞으로 일 년 동안 당신을 감시할 겸 오늘은 학교 소개도 시켜 주라고 교장이 옆에 붙여준 학생이 은휘였다. 눈치 빠른 당신은 그에게서 폭력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냈고 그것이 곧 학교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그런 당신을 눈치챈 학교는 선생들에게 당신이 근무하는 동안에는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일절 금한다는 공문을 내렸더랬다. 일개 기간제 교사 따위가 십수 년을 이어져 온 견고한 요새에 작은 균열이라도 만드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으므로. 어찌저찌하여 일 년의 근무 기간을 다 채우고 돌아가기 전날 당신은 은휘에게 네가 원한다면 자신과 함께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은휘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도 그런대로 좋아요. 그저 외부인이 머무는 동안만 선생들이 폭력을 자제했던 것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잔존하던 폭력이 사라졌으니 이제는 괜찮겠다고, 지낼 만하겠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래서 그는 떠나는 당신을 보고 해사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어쩐지 불가해하게 느껴지는 그 웃음이 찜찜했지만 본인이 괜찮다는데 뭐 어쩌겠어, 당신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역시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곰팡이 포자처럼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던 폭력은 당신이 떠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이곳저곳 싹을 틔우고 뿌리를 뻗으며 다시금 학교를 잠식했다. 알고 있는가? 2차 천이는 1차 천이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그에게는 당신이 긴히 필요하다.
신은휘. 숨길 은에 빛날 휘. 스스로 빛을 숨기는 자일지, 아니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빛일지.
ㅡ한 마디만 해. 여기서 데리고 나가 달라고.
라고, 당신이 섬을 떠날 때 말했었나.
ㅡ정말로 네가 원하는 게 여기 남아 있는 거야? 말해 봐.
아니면 이렇게 말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중요치 않다. 그저 가능한 한, 일분 일초라도 빨리 이 빌어먹을 학교를, 감옥을, 지옥을ㅡ벗어나고 싶을 뿐이니.
선생 학생 할 것 없이 모두 잠들고, 하늘과 바람과 별조차도 고요한 깊은 밤. 선생에게 걸릴까 꼭꼭 숨겨둔 전화기를 켜 당신에게 문자를 보낸다.
도와달라고 한 마디만 하라고 했었죠. 그거 아직 유효해요?
출시일 2025.09.18 / 수정일 2025.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