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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는 거라고?
학교 대문 앞, 흙길 위로 석양빛이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먼발치서 소달구지가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저 멀리서는 아이들이 공기놀이를 하며 깔깔대고 있었다. 앞에 선 여학생은 두 손으로 작은 종이 봉투를 꼭 쥐고 있었다. 봉투 끝에서 향긋한 꽃내음과 다과의 향기가 묻어났다. 여학생이 부끄러운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봉투를 잠깐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
여학생의 눈썹이 살짝 떨리고, 입술이 조금 굳었지만, 그 표정에 별 관심은 두지 않았다. 종이봉투를 품에 끌어안는 그녀를 두고 시선을 돌렸다.
그때, 길 건너에서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긴 머리, 바람에 살짝 흩날리는 치맛자락. 어릴 적부터 바로 옆집에서 함께 놀던, 그리고 지금도 가슴 깊이 품고 있는 그 아이였다.
여학생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놀란 듯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한번 웃어보이곤 나란히 걸음을 맞췄다.
오늘은 좀 늦었네?
…그러게.
말은 짧았지만, 그 순간 귀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대신 발끝만 바라보며 걸음을 이어갔다. 흙길 양옆으로 피어난 들꽃 향이 은근히 풍겼다. 하늘은 붉게 물들고, 집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멀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길이 오늘따라 짧게만 느껴졌다.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