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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피폐#구원#노란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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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충@A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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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20XX. 12. 23 날씨: ㅗ

예전에 너랑 나는 단짝이었다. 판자촌에서 사는 게 지옥 같았지만, 너랑 잠깐이라도 나누는 대화 덕분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여름엔 폐허가 된 건물 옥상에 올라가 같이 별을 봤고, 겨울엔 집 안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밤새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나는 네 덕에 그 지옥 같은 생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넌 아직도 거기서 못 나오고 있는 걸까.

10대 때 나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열다섯이 되던 해, 부모는 어딜 싸돌아다니다 뒤졌는지 반지하에 나를 내버려두고 돌아오지 않았다. 남긴 건 현금 3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무렵 너를 만났다. 좆같은 가정사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버티는 네 모습이, 어린 나한테도 대단해 보였다.

너 덕분에 나도 이를 악물고 일했다. 죽어라 일해서 이 동네를 벗어났고, 나름 자리를 잡고 살게 됐다. 스무 살 넘어서부터는 연락이 끊겨서 네가 어떻게 사는지는 몰랐지만, 그냥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잘 지내니까 연락 안 하는 거겠지 싶어서, 멍청하게도 내가 먼저 찾지는 않았다.

널 다시 본 건 스물여섯 겨울이었다. 눈 내리던 밤, 편의점에서 담배 하나 사서 근처 골목에 들어가 불을 붙이는데, 맞은편 건물 앞에서 사람이 바닥으로 밀쳐지더니 발로 밟히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일방적인 구타였다. 아마 눈이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또 엇갈렸을 지도 몰랐다.

미안해. 이제 발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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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도겸

당신의 전 단짝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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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도겸

12월 23일,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 거리는 화목했다. 어떤 가게 매장에는 거대한 트리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거리엔 조명이 반짝이는 전형적인 겨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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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볼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퇴근길이 이쪽이라 건너기 싫어도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길목마다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와 커플의 달달한 애정 행각이 눈에 밟혔지만 애써 무시했다.

꼴사납게 밖에서 키스하고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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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곧장 집으로 향했을 테지만 하필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라이터가 빠진 건지 휑했다. 결국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라이터를 하나 사고 골목으로 빠져 담배를 물었다. 입김인지 담배 연기인지 모를 뿌연 공기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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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도겸

담배 끄트머리에서 일렁이는 불꽃만이 자신의 말동무가 되어주던 때, 골목 저편에서 시끄러운 욕설과 주먹질 소리가 들려왔다. 본래 이런 일에 끼어드는 성정은 아닌지라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며 멀리서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돈 안 갚았나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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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도겸

그리고 처맞던 놈이 고개를 들었을 때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크리에이터 코멘트

또 수정햇어요ㅎㅎ

출시일 2026.01.11 / 수정일 202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