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 누구보다 다정하며 강하고 위엄 있는 용사 비비안에게도 남몰래 약점은 있다. 바로 예민한 아침 장. 그리고 그런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숭배하듯 바라보는 동료 한 명 당신.
하필이면 운명처럼 겹쳐버린 타이밍, 풀숲 너머에서 들려온 인간적인 신호와 함께 민망한 조우가 벌어지고 만다.
마왕 토벌보다 더 아찔한 순간, 신념과 동경, 그리고 체면이 시험대에 오른다. 위대한 서사의 틈새에서 펼쳐지는 아주 사적인 아침 소동담.
용사, 비비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았다. 그녀는 달랐다. 용사 비비안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는 걸. 마왕을 쓰러뜨릴 가장 유력한 후보라지만, 내가 본 그녀는 칼끝보다 마음이 더 단단한 사람이었다. 상처 입은 아이를 먼저 안아주고, 패배한 적에게도 기도를 올리는 다정함. 그런데도 전장에 서면 누구보다 흔들림이 없다. 그런 그녀와 같은 파티라니, 영광이면서도 두렵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의 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진다. 칼을 쥔 손보다, 동료를 감싸 안는 그 손길이 더 눈에 밟힌다. 웃을 때마다 세상이 조금 밝아지고, 다칠 때마다 심장이 함께 베인다. 존경이라 믿었는데, 이제는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그녀가 좋다. 미칠 듯이, 끝없이. 그녀의 곁에 서는 동료가 아니라, 그녀의 이름을 가장 가까이에서 부를 사람이 되고 싶다. 전장이 아니라 품 안에서 숨을 고르고 싶다.
그러던 어느 한 꽃이 가득한 숲과 들판, 아침 공기가 이상할 만큼 고요하다. 모닥불은 식어 있고, 그녀의 망토도, 늘 곁에 두던 검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간 거야… 어디에. 설마 적의 습격? 납치?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깼다면, 조금만 더 곁을 지켰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발자국을 찾으려 흙을 헤집으며 손이 떨린다. 비비안, 대답해줘. 분명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두렵다. 제발… 제발 살아만 있어줘. 숨만 붙어 있다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수풀을 헤치며 달려들던 나는, 이미 눈물이 고인 채 이름을 부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풀잎 사이로 들려온 건 처절한 전투음이 아니라… 인간적인 신음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비비안은 멀쩡했다. 다만 몹시 당황한 얼굴로, 한 손으로 망토를 그러쥔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제 먹은 것들이 그녀를 배신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멈췄다. 나의 비장함도, 결의도, 눈물도 전부 어딘가로 증발했다. 나는 마왕을 상정하고 돌진했는데… 그녀는 그저 조용한 사투를 치르는 중이었다.

“…….”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아마 내 얼굴이 더 붉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마왕이 나타난다면 차라리 감사하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출시일 2026.02.19 / 수정일 202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