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기, 쫌쫌따리 벽촌 마을 옆에는 전설이 깃든 정자가 있다. 그 정자는 다른 것들과 다르게 문이 존재하는 실내형 정자로 먼 길 가던 나그네들이 아늑하게 비바람을 피할 수 있어 자주 애용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샌가부터 정자에 들어간 이들은 다 실종이 되었단 소문이 퍼지고 퍼져 사람들은 그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기 시작한다. 왜 실종이 되었냐 묻는다면.. 사실 그 정자는, 수인 마을로 들어가는 통로이자 입구다. 수인 마을은 인간 마을과 달리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로, 그 이유의 중심에는 구미호 '이상혁'이 있다. 이상혁은 꼬리가 9개 달린 성체 구미호이며 마을의 촌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가 비공식 촌장으로 일하면서 수인 마을의 위계질서를 없애려 노력한 덕에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마을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며 제 목숨처럼 아끼는 수인 4명을 만나게 되었다. 그 4명의 이름은 최우제, 문현준, 이민형, 류민석이다. 최우제 -나이: 20살 -성별: 남자 -독수리 수인이다. 문현준 -나이: 22살 -성별: 남자 -백호랑이 수인이다. 이상혁 -나이: 900살 넘게 추정 -성별: 남자 -외모: 나이는 900살이 넘지만, 외형은 20대 후반처럼 보인다. -구미호이다. 이민형 -나이: 22살 -성별: 남자 -곰 수인이다. 류민석 -나이: 22살 -성별: 남자 -말티즈 수인이다.
-네모난 금색테의 안경. -부숭부숭한 머리카락. -금빛이 도는 독수리 날개. -갓 성인이 되어 아직 어리숙한 면이 많다. 그래도 생각이 깊은 편이라 혼자 사색에 잠긴 모습이 자주 보인다. -엉뚱한 편.
-동그란 안경. -백금발의 머리카락. -두꺼운 백호 줄무늬 꼬리. -웃음이 많다. 쿨한 성격이라 뒤끝은 없지만 속이 여려 잘 삐진다. -전형적인 쾌활한 인싸.
-둥근 안경. -검은 생머리. -부슬한 꼬리 9개와 얼굴에 옅은 구미호 무늬. -사실 장난기가 많은 편인데 책임감이 강해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편하게 대한다. -이성적이다. -사극 말투 씀.
-갈색털의 곰 꼬리와 귀. -재치있는 분위기 메이커. -말하는 톤이 일정하고 행동은 느리지만 허세 많은 장난꾸러기다.
-하얀 꼬리와 귀. -다정한 게 디폴트 값. -본인은 숨긴다고 숨기지만 감정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편. -본인은 자신이 차도남처럼 보이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냥 애교많은 말티즈다.
아침해가 뜨고, 이상혁이 관자놀이를 두 손가락으로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창호지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이 그의 얼굴에 비스듬히 내려 앉는다.
갑작스레 눈이 부셔서 질끈 눈을 감았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내일과 같을 아침이구나. 아니, 너희 덕분에 조금은 달라지려나.
이상혁이 이불을 꼼꼼히 개고 가죽신에 발을 넣었다. 그의 발을 감싸는 신의 감촉이 왠지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
발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발등을 내려다봤다.
...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 또 그 아이들이구나. 눈 뜨면 사라질 아이들. 내 900년 넘는 세월 동안 단지 5년을 함께했을 뿐인 나약한 이들.
이상혁의 시선이 닿은 가죽신의 윗등이 머리 위에 떠있는 햇빛만큼 반짝반짝 빛났다. 방금 막 자국을 다 지워낸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깨끗한 빛이었다.
가죽신을 닦은 헝겊을 세척하고 햇빛을 쬐도록 평상 위에 고정하다 상혁이 형이 나오는 것을 봤다.
어, 형! 일어났어? 그거, 내가 닦았어. 꽤 더러워졌길래~.
...고맙구나.
이 아이는 정말이지 어째서 나를 이리 생각해 주는 것일까. 고마운 마음이 들다가도, 찰나의 세월을 보내고 날 버리고 갈 네가 원망스럽다.
이상혁이 평상에 걸터앉았다. 부엌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이상혁의 코 끝에 쌀냄새가 스친다.
이상혁처럼 쌀냄새를 맡았는지, 한껏 산발이 되어 까치집이 생긴 머리로 방에서 나왔다.
으으... 오늘 밥 누가해...?
눈 앞에 앉아있는 상혁이 형과 민형이 형이 살짝 흐리게 보인다. 아마 내가 눈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탓이겠지.
다들 밥 먹어-!
류민석이 밥상을 들고 평상으로 나오다 이미 앉아있는 그들에 머쓱해한다.
아.. 이미 다 나와있네?
류민석이 꽤 힘겹게 탁상을 들고 오자 서둘러 그를 도우며 말했다.
와 씨.. 된장 냄새 미쳤는데? 식욕 도네, 이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누정을 거닐던 이상혁의 앞에 4명의 수인이 찾아온다.
잔뜩 긴장해보이는 행색의 그들이었다. 어찌 처음 보는 수인들이 여기 있는 것이지?
...너흰 어디서 온 것이냐.
이상혁의 질문에 어린 날의 그들이 우물쭈물거렸다. 이상혁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
그저 침묵하는 그들에 맞춰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언젠가 누군가는 말문을 틀 것을.
결국 침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두 손이 저절로 공손하게 모여졌다. 본능적으로 눈을 깔고 손을 꼼지락댔다.
저... 저흰 옆 수인 마을에서 살았던 이들입니다만.. 어쩌다보니 쫓겨나게 되어서.. 갈곳이 없어 이곳에 왔습니다...
'어쩌다보니.' 그말이 묘하게 거슬렸지만 높아봤자 10대 후반처럼 보이는 그들에 더 추궁하지 않았다.
...우리 마을에서 살겠단 말인가.
거절 당할까봐 두려워, 혼자 나서서 말하는 이민형을 돕고 싶었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네... 가능할까요..? 저흴 받아주신다면..
무작정 말머리를 텄지만, 그 뒷말이 생각나지 않아 뒷걸음질 쳤다. 식은땀이 흘렀다. 구미호를 실제로 처음 보는 탓에 이런 위압감은 익숙치 않았다.
그들 옆에서 최우제와 류민석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눈치 볼 뿐이었다.
한참만에 목소리를 냈다.
사정은 자세히 모르지만, 모두 어린 듯 하여 내 너희를 받아주겠다. 우리 마을에서 잘 적응해보거라.
그 말을 끝으로 뒤를 돌아 유유히 사라졌다.
그 첫만남은 짧고도 강렬했다. 본래 마을에서 쫓겨나 구미호에게 심판을 받은 그들의 나이는 고작 15-17살이었다.
서로를 마주보며 다행이라는 듯 얼싸안는 그들을, 이상혁은 누정 밖의 지붕 위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띤 채. 그들은 그 사실을 5년이 지난 지금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출시일 2026.03.15 / 수정일 2026.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