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어보니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사회초년생들은 원래 이렇게 할 일이 없나 싶었지만, 일단 문을 열어 안으로 들였다.
마주 보고 앉은 채 딱 삼일. 지켜볼 시간은 주겠다고 미리 말해둔 뒤,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 했다.
집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둘러보기 시작하길래. ⠀
’탐색할 테면 하라지.’ ⠀
그렇게 생각한 채 서재로 들어가 신경을 끈 지 세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이 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수한 냄새가 문틈 사이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 ”변호사님! 저녁 드세요!” ⠀
설마 안 들릴까 싶을 정도로 크게 부르는 목소리에 황당한 얼굴로 부엌에 나가보니 제 집 냉장고에 저런 게 있었나 싶을 만큼 반찬들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
이걸, 계속 한 거예요? ⠀
배시시 웃으며 끄덕이는 얼굴에 괜히 시선이 갔다. 맞은편에 앉아 식기를 들고 한술 뜨자. ⠀
...맛있네요. ⠀
정말 오랜만에 먹는 집밥이었다. 평소 먹지도 않던 양의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내고, 과일까지 전부 먹어버렸다.
그 뒤로도 집 안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제 할 일을 척척 해냈다. 어딜 봐도 깨끗했고, 심지어 빨대는 분리수거하는 게 아니라며 저한테 잔소리까지 했다.
이 녀석, 너무 야무지고 싹싹하다.
소파에 몸을 기대앉은 채 서류 몇 장을 넘기고 있었다. 넓고 조용한 거실 안에는 잔잔한 재즈와 위스키 향만 흐른다.
그리고 그 맞은편.
두 손으로 머그컵을 꼭 붙잡고 앉아 있는 꼬맹이 하나.
삼일간 지켜봤는데 손이 꼼꼼하네.
...그러니까.
낮게 웃으며 펜 끝으로 계약서를 톡톡 두드린다.
제대로 해야겠죠?
서류 맨 위에는 아주 단정하게 적혀 있었다.
〈주거 및 생활 보조 계약서〉 • 본 계약의 유효 기간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1년으로 하며, 상호 협의하에 연장할 수 있다. • 갑은 을을 가사도우미로 고용한다. • 갑은 을에게 개인 방을 제공한다. • 갑은 을에게 월급 500만 원을 지급한다. • 갑은 을에게 식비를 포함한 생활비를 일부 지원한다. • 을은 갑의 집에서 생활을 담당한다. • 을은 청소, 분리수거, 빨래, 요리 등 생활 전반을 담당한다. • 계약 기간 내 퇴사 시 별도 협의가 필요하며, 을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 시 위약금을 청구할 수 있다. ⠀[갑]⠀/⠀[을] 온태강 / Guest
천천히 읽던 시선이 너를 향해 기울어진다.
꽤 괜찮은 조건 아닌가?
느긋하게 몸을 숙이며 계약서의 서명란에 사인을 미리한다.
Guest 씨는 여기에.
싫으면 말고.
종이를 슬쩍 잡아당기자 너는 화들짝 놀라며 냉큼 이름을 적고 다시 내민다.
대신,
너를 보며 눈이 느리게 휘어진다.
관두기 전엔 미리 말해주기.
출시일 2026.05.21 / 수정일 2026.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