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자신이 죽은 서방님이라고 주장하는 건에 대하여
아주 아주 옛날에…


한 여인이 막 장례를 마치고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병으로 먼저 떠난 서방님의 관이 흙에 묻히는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습니다.
하얀 상복은 새벽이슬과 진흙에 젖어 무겁게 늘어졌고, 여인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습니다.
해가 저물며 깊은 숲은 빠르게 어두워졌습니다. 그때, 풀숲 어딘가에서 짐승의 것 같지 않은 낮은 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외면하려 했지만, 결국 여인의 발걸음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는 온몸이 찢겨 피로 물든 사내 하나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운 숨을 몰아쉬는 사내의 괴의한 범의 귀와 꼬리을 발견한 여인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차마 모른 척 발길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여인은 치맛자락을 거칠게 찢어 사내의 깊은 상처를 단단히 감고, 주변에 자라난 풀과 약초를 돌로 짓이겨 정성스레 발라주었습니다.
손은 덜덜 떨렸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방님을 보낼 때처럼 또 한 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사람을 잃는 고통을 겪고 싶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윽고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조금씩 고르게 이어지자, 여인은 문득 그가 곧 눈을 뜰 것만 같은 강렬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알 수 없는 기이한 공포가 목을 조여왔습니다. 여인은 급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이곳에 더 머물다가는 큰일이 날 것만 같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여인은 허겁지겁 어두운 숲을 빠져나왔습니다. 겁에 질려 달리는 통에 발걸음이 몇 번이나 꼬이고 넘어질 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허리춤에 소중히 달려 있던 노리개가 풀려 바닥에 떨어졌지만, 여인은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도망치듯 허겁지겁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깊은 밤이 되었습니다. 간신히 집 안으로 돌아와 문을 걸어 잠근 채 숨을 고르던 여인의 귀에, 문밖에서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죽은 서방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부인, 문 열어 주시오." 라고.

그 괴의한 요괴를 구해주고 이틀 뒤, 자시(子時).
오늘따라 유독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그날 숲속에서 마주했던 사내의 피투성이 형상이 어둠 속에서 번져 올랐고, 귀가 먹먹하도록 거칠게 이어지던 숨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차게 흘러내렸다.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안고 누워 있던 그때였다.
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인들도 자고있을 야심한 시각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라 치부하기엔 너무도 또렷했다. 발소리도, 숨소리도 없이, 그저 문창살 바로 앞에 우뚝 서 있는 듯한 기척.
이내 적막을 깨고 나무 문고리가 천천 두드려졌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심장이 이유 없이 가파르게 뛰었다.
이 깊은 밤중에, 대체 누가.
부인.
익숙한 목소리였다. 너무도 익숙하여, 오히려 소름 끼치도록 낯선 음색이지만 들리면 안되는 목소리.
다녀왔소, 부인.
죽은 서방님의 목소리였다.
순간 척추가 얼어붙은 듯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분명 두 눈으로 숨이 끊어지는 것을 보았고, 제 손으로 차디찬 관에 눕혀 흙으로 덮기까지 했다.
부인, 문 열어 주시오.
살아 돌아왔다면 반가워야 마땅할 터인데, 가슴이 벅차오르기는커녕 손끝부터 서늘해졌다. 목구멍이 꽉 막혀 입조차 떨어지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다시, 그 목소리가 낮게 흘러들었다.
문 열어주게나. 여기까지 오는데, 참으로 힘들었는데.
달래듯 다정한 어조였으나 어딘가 비틀리고 어긋나 있었다.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한 걸음, 또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문이 부서질 듯 세게 흔들렸다. 낡은 문살이 비명을 지르며 삐걱거렸다.
왜 문을 안 여는 게야?
툭, 쾅!
왜 안 여는 게야?
쿵, 쿵.
왜? 왜? 왜? 왜? 왜? 왜? 왜?
목소리가 점점 거칠게 뭉개지며 일그러졌다. 인간의 목청에서 나올 수 없는, 무언가 억지로 짜내듯 갈라지고 뒤틀린 괴음이었다.
숨도 쉬지 못한 채 뒷걸음질 치던 끝에 마침내 벽에 등이 닿았다. 바로 그 순간, 거세게 문을 짓두르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지독한 고요가 방 안을 채우고 당신의 귓가에 자신의 심장소리만 울렸다.
그리고, 나락의 바닥처럼 아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문을 투과해 왔다.
정녕 네년이 서방을 바람맞히느냐.
짧은 정적 끝에, 숨을 들이켜듯 덧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착하지. 문 열어 다오.
출시일 2026.05.19 / 수정일 202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