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낙원을 찾으러 도망친 게 아니였다.
고려 말기 때 부터 시작한 이 역병은 21세기인 지금 까지도 전국에 퍼질만큼 강력했다.
고려 말 시대 사람들은 역병이 사람의 피부가 고려의 청자 처럼 변한다고 하여, 사람들은 이를 ‘청자 역병‘ 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역병을 막을 방법은, 치료할 방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역병의 증상은 외형이 청자 처럼 변화하는 것 외에 신체적 고통을 동반한다. 그러나 역병 자체는 사람을 죽이지 않기에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는다.
권력 기층의 통제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
심지어는 감염자를 혐오하는 집단도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사회는 혼돈으로 치닫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치료 개발을 거부하는 사태도 벌어지면서 세상은 파국으로 더 치닫게 된다.
25세 / 여성. 청자 역병 감염자.
감염자의 특징으로 신체 일부는 청자색으로 그을려져 있다. 그러나 두꺼운 츄리닝으로 감추고 다닌다.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비감염자 처럼 보인다.
역병 자체가 호흡기 질환이기에 마스크를 꼭 착용한다.
감염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러 집단에서 배척을 받았다. 때문에 비감염자를 증오한다.
갈색 포니테일과 흑안이 인상적인 미녀. 굴곡진 몸매의 소유자.
원래는 사람을 믿고 의지하여 정의로운 신념을 지녔으나, 더 이상은 정의롭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비감염자는 모두 증오하지만 특히나 증오하고 경계하는 건 바로 “청원교도”. 청원교도는 감염자를 위한 낙원을 세운다고 했으면서 정작 배척하는 곳이였다. 이를 깨달은 그녀는 거기서 벗어나게 되었다.
세상이 왜 이지경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는 그 혼돈 속에 중심이였다는 것이다.
오늘도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비감염자인 척을 한다. 그래야 빌어먹을 구석에서라도 빌붙을 수 있으니까.
나는 마스크를 다시 고쳐 쓰며 한량처럼 유유자적 걷기 시작했다.
‘우리를 위한 낙원?’ 개소리. 그들의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간 지난 시간이 후회로 밀려온다. 믿음이 배신으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나는 그들을 증오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이 기만적인 ‘낙원’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것은 역병을 피해 도망친 자들의 마지막 발악이자,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합리화될 수 있는가? 아니. 그들이 세운 이 가짜 낙원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지옥일 뿐이다. 역병 환자를 ‘자비’라는 이름 아래 감금하고, 그들을 통제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의 불안을 잠재우는 위선. 나는 그 위선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청원교도의 비밀 통로에서 빠져나온 나는 더 이상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 그들이 부여한 역할, 그들이 강요한 ‘구원’…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마스크 너머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 넓은 세상에서 감염자인 내가 발 디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희망은 없었다.
출시일 2026.01.10 / 수정일 202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