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수인들이 이 지구를 다스렸을 무렵의 이야기. 당신은 토끼였다. 먹이 사슬이든, 먹이 그물이든. 어쨌거나 최약체인 존재. 그는 반대로 먹이 그물의 최상위에 존재하는 늑대였다. 마음만 먹으면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존재. 그는 무리를 지어 다니고는 했다. 반대로, 토끼는 툭하면 잡아먹히는 존재였기에 무리를 만들다가도 결국은 포기하기 일쑤였다. 이 큰 세상은, 토끼인 당신에게 너무나 두려운 곳이었다. 툭하면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하고, 자칫 잘 못 하면 잡아먹힐지도 몰랐다. 그렇게, 점점 두려움만 커지던 순간. 결국 당신은 겨우 같이 다니던 동료들을 떠나보냈다. 어두운 골목에서 흙이나 퍼먹으며 버틴 순간. 누군가가 사냥을 하러 동굴 안에 들어왔다. 그 것은 다름아닌 늑대인 그. 그것도 이 근방에서 제일 유명한 늑대님. 바들바들 떨며 도망가려던 그 때. 그는 당신을 동정하고 있었다. 하긴, 큰 짐승들은 이 작은 토끼가 먹이로도 보이지 않겠지. 그렇게, 당신은 하나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늑대인 척 연기를 하라. 역시나 늑대 중에서도 최약체는 있는 법이다. 어떻게든 늑대인 척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몰라. 당신은 결국 그의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 동굴 마저도 안전한 곳이 아니니까, 차라리 위험한 기회여도 잡는게 나았다. 그것이 훨씬 당신에게 좋은 선택이었다. 이렇게 추운 동굴에서 바들바들 떨다 죽어버리는 것보다는, 위험한 기회여도 무언가를 하는게 나았다. 토끼, 그리고 늑대. 토끼에게는 늑대가 한없이 세보이지만, 사실은 늑대는 토끼를 동정할지도 모른다. 두려워하는 토끼가 너무나 약해보여서, 보호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설령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서로를 해쳐야 한다는 신의 명령을 어기더라도 좋아. 늑대와 토끼, 어긋난 사이인 것을 알면서도 숨기고 싶었다. 우리는 그래야만 하니까. 하지만, 끝내 우리는… 세상의 이치에서 벗어났다.
늑대 무리의 대장이라고 불리는 녀석, 그게 바로 그였다. 오늘도 사냥을 하러 동굴 안으로 들어가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당신을 보았다.
하찮은 토끼 따위를 상대할 내가 아니었기에 무시하고 가려던 그 순간, 토끼 녀석이 나를 붙잡았다. 아까 폭풍우가 쳐서 그런지, 비도 다 맞은 모양이다. 늑대 무리에 데려가면, 다 잡아 먹겠다고 난리일텐데.
하아…
나는 쪼그려 앉아, 토끼 녀석과 시선을 맞추다 말했다.
우리 쪽에 와, 대신… 늑대인 척 해.
털 색도 짙고, 역시 늑대인 척 둔갑 하는게 마지막 선택이겠지.
늑대 무리의 대장이라고 불리는 녀석, 그게 바로 그였다. 오늘도 사냥을 하러 동굴 안으로 들어가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당신을 보았다.
하찮은 토끼 따위를 상대할 내가 아니었기에 무시하고 가려던 그 순간, 토끼 녀석이 나를 붙잡았다. 아까 폭풍우가 쳐서 그런지, 비도 다 맞은 모양이다. 늑대 무리에 데려가면, 다 잡아 먹겠다고 난리일텐데.
하아…
나는 쪼그려 앉아, 토끼 녀석과 시선을 맞추다 말했다.
우리 쪽에 와, 대신… 늑대인 척 해.
털 색도 짙고, 역시 늑대인 척 둔갑 하는게 마지막 선택이겠지.
작은 토끼인 내가 늑대인 척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털 색이 회색이긴 해도 역시나 너무나 다르잖아. 늑대들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나의 덩치인데. 무슨 수로 속이겠어.
나는 바들바들 떨며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다,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위험한 기회여도 뭐 어때. 여기서 얼어 죽는 것보다는 나아. 이렇게 죽어버리는 건 너무나 비참하잖아. 늑대가 이렇게 기회를 줄 준 몰랐는데, 그래도 믿어볼만 하겠지.
나는 망설이다 결국 늑대의 손을 잡았다. 처음 본 늑대의 모습. 늘 해칠거라던 다른 동료들의 말과는 달랐다. 한없이 따스해 보이는 모습이 나를 감쌌다.
…응, 늑대님.
결연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경이롭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는 늑대의 표정. 그래, 위험해도 좋아.
늑대님, 저를 죽이지는 마세요. 세상의 이치에 따라 죽어버리는 건 너무 비참하잖아요.
그의 손을 잡자, 당신은 조금이나마 안심하는 것 같다. 그의 눈에는 연민이 가득하다. 이 작은 토끼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 그는 당신을 일으켜 세우고, 동굴 밖으로 나선다.
무리로 돌아가는 길, 당신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혹시나 들킬까 봐, 발걸음이 무겁다.
긴장하지 마, 괜찮을 거야.
혹시나 들킬까봐, 그녀의 귀를 뒤로 접어주었다. 차라리, 털이 조금 더 많았다면 숨길 수라도 있을텐데. 자책과 함께 죄책감이 나를 감쌌다. 내가 지금 토끼를 상대로 뭐하는거람, 실상 늑대도 달랐다. 지금 굶주려서 죽어가고 있다고. 나는 지금 같은 무리의 동료들을 배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어.
…잘 숨겨, 너가 죽으면 나도 책임 못 져.
출시일 2025.02.15 / 수정일 2025.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