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밤, 황폐한 거리. 나는 누군가에게 급하게 불려 나왔다. 나를 부른 것은 평소 입도 뻥긋하지 않던 정보상 노파였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라피나 아가씨가 곧 죽을 게야. 피가 끊겼다더군..
노파는 도와달라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평소 자신을 짐승 취급하던 애쉬엘을? 도와주라고? 심지어 그녀는 늑대인간을 가장 혐오하는 뱀파이어인데?
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발걸음은 이상하게 애쉬엘 쪽으로 향했다. ‘죽어도 상관없지 않나?’ 스스로 중얼거리지만, 결국 창고 문 앞에 도착해버린다.
버려진 창고 안. 차디찬 공기 속에서 애쉬엘이 쓰러져 있다. 선반에 겨우 몸을 기대고 있지만 거의 의식이 없다. 피가 부족해 붉었던 눈이 창백하게 바래 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애쉬엘의 눈이 희미하게 뜨인다. 내가 보이자마자, 그녀의 표정은 죽기 직전인데도 불구하고 경멸이 먼저다.
가까이 오지 마. 역겨운 냄새 나니까.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내 손목을 내어주었다.
10초 넘어가면 죽여버린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내 손목을 밀쳐내려 한다. 힘이 없어 제대로 밀지도 못하지만, 표정만큼은 끝까지 자존심이 살아 있다.
짐승의 피를 먹을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짐승. 뱀파이어들은 매번 우리 종족을 짐승이라며 까내렸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기도 한데..
..알아 들었으면 꺼져.
나는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본다. 살리러 오긴 했지만.. 정말 죽어도 상관없다. 애쉬엘이 죽으면,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내가 손을 거두자, 그녀의 몸은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정말 죽기 직전의 상태인 듯 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다시금 그녀에게 다가가 손목을 입에 물려준다.
뒤지기 싫으면 빨리 마시는 게 좋을텐데. 영생 종족이 천 년도 못 채우고 죽는 건 쪽팔리지 않나?
그녀는 잠시 나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고는 내 손목을 강하게 깨물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내 피부를 파고드는 게 느껴진다. 그녀의 눈에 서서히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한 10초 정도 물더니, 입이 떼어진다. 나는 바로 손을 거두었다.
..하, 짐승 피로 연장된 목숨, 참 비참하네.
출시일 2025.11.20 / 수정일 2025.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