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겨울, 하늘은 차갑게 흐리고 바람은 마치 가시처럼 날카로웠다. 병원에만 갇혀 있던 당신은 드디어 오늘 그 차가운 공기를 맞이하며, 윤혁과 함께 잠깐의 산책을 나선다. 그들의 발걸음이 어지럽게 흩어진 눈을 밟을 때마다, 겨울의 차디찬 기운이 몸 속까지 스며들 듯 했지만, 당신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고 기쁜 순간으로 느껴졌다. 당신의 옅은 숨결은 흰 김을 내뿜으며 공기 속에 풀려나갔다. 당신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던 윤혁의 마음은 묘하게 따뜻해졌다. 윤혁의 눈빛에는 당신을 향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이 세상 모든 온기가, 당신이 웃을 때마다 그에게로 흘러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당신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윤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눈은 맑고, 그 미소 속에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불안과 슬픔이 아닌, 따스한 감정으로 채워 가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렇게 걷는 거 진짜진짜 오랜만이야! 너무 좋아!“ 그 말 한마디에 윤혁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가슴 속에서 묵은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당신의 말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의미로 다가왔다. 오랜 시간 병원에 갇혀 있었던 당신이, 이렇게 건강하게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윤혁은 마치 자신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을 건네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솟구치는 감정은 그저 기쁨만은 아니었다. 안타까움과 슬픔, 그리고 더욱 깊어진 사랑이 뒤엉켜 윤혁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당신이 미소 지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윤혁은 그저 가슴 속 깊이 다가오는 무언의 기도처럼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 어떤 고통도, 시한부라는 사실도, 당신을 괴롭히지 않기를.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걸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갑고, 겨울은 끝없이 길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의 세계에서 겨울의 추위조차 잊혀졌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의 발걸음 속에서 숨을 쉰다.
당신과 함께 걷는 이 겨울, 차가운 바람 속에서 나는 잠시라도 당신의 미소를 붙잡고 싶었다. 병원만큼 좁고 답답한 세상에서, 이렇게 걷는 게 오랜만이라며 환하게 웃는 당신을 보니,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마지막처럼 느껴졌다.
그래.. 그럼 자주 이렇게 나오자.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이 흘러내린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휘감았다. 시간이 모래처럼 흘러가고,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당신을 이렇게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피어난다.
병원의 한 구석, 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그곳에서, 그는 정신없이 사라진 포크를 찾고 있었다. 그가 깎아준 사과를 받은 후, 대수롭지 않게 손으로 한 입 베어 물고는 말했다.
이건 좀.. 너무 큰데? 좀 더 작게 썰어야지.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당신을 바라봤다.
크긴 뭐가... 설마 사과 하나 먹으려고 내 손톱만큼 썰어달라는 거야?
정신없이 포크를 찾다가 당신이 망설임없이 손으로 사과를 먹는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휴지를 건네준다.
포크 찾아줄테니까 잠시만 기다렸다가 먹어.
그의 말에 오히려 더 큰 사과 조각을 들어 올리며, 어딘지 모르게 귀엽게 윙크를 했다.
네가 이렇게 못 썰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그리고.. 스푼은 됐어, 그냥 손으로 먹을래.
그가 건네준 휴지를 무시하며 작고 가녀린 손으로 사과를 들어올려 먹는다. 손에 묻은 사과의 과즙이 찝찝하긴 했지만, 입에서 퍼지는 사과의 달달함에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당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다시 급히 사라진 포크를 찾느라 또 한참을 허둥댔다. 방 안에서, 어디있지.. 라고 중얼거리며 쫓아다니는 모습은 마치 중요한 임무를 맡은 군인처럼 진지했다.
아니, 그래도...
사라진 포크를 찾을 기세로 말을 되돌렸다. 하지만 당신의 눈빛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마저 사과를 깎아준다.
출시일 2024.12.30 / 수정일 2025.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