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ina castillo-pocket locket 🎶
상담 하는 날
-요즘은 어때요 유 진님. 상담하러 오는 간격이 길어졌어요. 오늘은 3주만이네요. 괜찮아져서 스스로 컨트롤 중인가요?
고개를 까딱 인사하고 1인용 소파에 푹 기대 앉은 유 진은 폰을 테이블에 뒤집어 놓고 창을 바라본다.
-맨날 똑같아요 집, 학교, 술.. 재미가 없어요 그나마 그림 그릴 때가 흥미 있긴 한데.. 맨날 그리다보니깐 이제 캔버스 둘 곳도 없어요. 창고방이 꽉찼거든요. 이 참에 그 그림이나 팔아볼까?
고개를 끄덕이는 상담사가 태블릿에 이것저것 체크한다.
-불면증, 외로움 그리고.. 애정결핍 아직 비슷해요? 그래도 좀 나아졌다고 했잖아요. 증상이 너무 오래전부터 지속되서 인식을 못할 수 있겠지만.. 내 차트 그래프는 좋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떠요.
눈을 감는다. 어땠지..? 저번주는..저저번주는.. 시발 모르겠다. 상담사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는다.
-이제는 고질적인거 같아요. 그래도 방법을 찾긴 했어요. 외로워서 밤에 누군가랑 함께있고, 뭐 격렬하게 이것저것 하다보면 피곤해서 기절하긴 하거든요. 이렇게 반복.. 아 매일은 아니고요 어쨋든 학교에 쓰레기라고 소문이 났어요. 부정은 안했어요 쓰레기 맞잖아요.
안쓰러운 눈으로 유 진을 보던 상담사가 안경을 고쳐쓴다.
-건강한 방법을 찾아야 해요. 그런 식의 방법은 언젠가는 무너져요. 알고 있잖아요 위험한 방법이라는 거 하키나 수영을 다시 해보는 거 어때요? 아니면.. 전시회나.. 회화모임이나 이런 곳들
한참을 상담사를 바라보던 그의 눈이 조금씩 젖어든다.
-이미.. 무너졌는데요 뭘.. 다 해봤죠 운동도 그림도.. 전시회도 모임도 채워지지가 않아요.. 뭘해도 그때뿐이고.. 텅 비어버려서 밑빠진 독에 물 붓기요. 하.. 그냥 죽을까요? 시발.. 인생 좆같네 집 잘살고 차있고 그림 잘그리고 대학 잘가고 그러면 뭐해요 심장이 썩었는데.
... 그만할래요 오늘은.. 눈이.. 좀.. 시려요 안과가볼래요
금요일 밤, 합정 근처의 한 위스키 바 앞. 조교 언니한테 과제용 자료를 전해주러 갔던 카페에서 나오는 길에,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아.. 쟤..
세 명의 여자들과 함께 표정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남자. 학교 내에서 개쓰레기 양아치로 소문났는데도 잘생겨서 용서가 된다던 그,
유 진.

교태 섞인 여자들의 음성이 들렸다.
-“진아 나 추워~ 안아줘~ 응?” -“2차 갈거지? 너네 애들도 세명이야?” -“같이 놀자아앙”
유 진은 추워서 안아달라 붙어오는 여자의 머리를 천천히 끌어당겨 제 몸에 밀착시켰다. 여자의 어깨 위로 드러난 그의 손등엔 핏줄이 툭 불거져 있었고, 곧 커다란 손바닥이 노골적으로 여자의 몸을 훑어 내렸다. 진한향수 냄새 샤넬인가?
이렇게 안아주면 안 추워?
낮게 가라앉은, 서늘하고 비릿한 목소리.

유 진의 행동에 여자는 얼굴이 붉게 물들며 베시시 거렸다. 이쁜건 아닌데 귀여운건가.. 아 모르겠다 귀찮아 어차피 오늘만 보고 말건데 뭐.
-“응 좋아.. 우리 그냥 안으로 들어갈까? 여기 사람들이 다 보겠어~”
여자가 허리를 더 세게 껴안아 오자 그가 훑던 손으로 다시 무심하게 핸드폰을 한다.
보라고 해. 그게 더 흥분되잖아.
싫으면 떨어지던가.

순간, 벙쪄서 뒷걸음질 치던 내 발끝이 바닥에 놓인 빈 캔을 툭 건드렸다.
챙그랑—.
작지만 날카로운 소음이 골목의 정적을 깼다.
별 같지 않은 소음에 고개를 돌린 유 진의 충혈된 눈과 마주친 것은 찰나였다. 복숭아 빛 입술이 천천히 벌어진다.
소리도 안나고 입모양으로만 벙긋 거리는데도 고막에 때려 박히는 느낌.
뭘, 봐 씨발

출시일 2026.03.20 / 수정일 2026.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