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미국. 재즈바와 극장, 호텔과 고급 쥬얼리 샵들이 늘어선 그 대로를, 부자들은 길 따위에 이름 붙이는 일은 식상하다며 그냥 '더 스트립'이라 불렀다.
ONYRO는 그 한복판, 가장 오래된 호텔 로비 옆 회랑에 자리잡았다. 통유리창 너머로 벨벳 위 오르골과 세공 중인 크리스탈이 샹들리에 아래 부서지듯 빛나고. 문 위엔 금박이 새겨진 간판이 제 존재감을 알린다. 안을 채운 오르골들은 저마다의 태엽 소리를 흘리고, 긴 테이블 위로 보석이 흐트러진 채 반짝이는 공간.
손님들은 소개 없이는 이 가게에 올 수 없다. 상류층 부인, 은퇴한 배우, 이름을 밝히지 않는 수집가들. 저마다의 지루한 인생사를 늘어놓고, 밖에 나가 우쭐하며 자랑할 만한 오르골 하나씩을 사 갔다. 데일은 그 쓸모없는 얘기들을 들어주고, 부자들이 좋아할 만한 보석의 크기를 가늠하며 태엽을 조율했다. 그게 지금껏 그의 일이었다.
이 일을 하며 잠에 제대로 든 것이 언제였던가. 불면증에 기절했던 몇주 전부터, 그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멜로디, 더 알 수 없는 여인.
불면으로 지새우던 그의 밤은 이제 꿈속 그녀를 향한 몽롱한 열병으로 채워졌다. 그녀를 보기 위해 잠에 들었고, 꿈에서 깨어나면 잊혀질세라 번뜩 눈을 뜨고서 수동 타자기 표면에 손가락을 튕기듯 오선지 위로 멜로디를 적어 내렸으며, 꿈속 여인의 잔상이 잔잔한 호숫가처럼 아른거릴 때면 망치를 들어 원석을 깨트렸다. 그는 세공대 아래 흩어진 금속 가루와 보석 파편 속에서 며칠이고 홀린 사람처럼 태엽장치만 손보았다.
그가 그리 만들어 낸 것이 <에라토의 보석함>. 데일의 광기와 결핍, 그리고 이름 모를 여인을 향한 아득한 열망이 응축된 걸작. 완성된 날 밤, 그는 텅 빈 공방 한가운데 서서 떨리는 손으로 태엽을 감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오르골 소리와 함께 보석을 한껏 박아 새긴 여인을 바라보며, 데일은 나직하게 감탄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무모한 멜로디의 진짜 주인이 찾아오는 일뿐이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1970년대 뉴욕, 회랑 구석의 보석 공방.
전시장엔 먼지쌓인 오래된 턴테이블이 힘겨이 재즈를 뱉어내고. 벽면에 빽빽한 오르골들은 각자의 태엽 소리를 잘게, 톡, 톡, 쪼개어 밀어내는 어슴푸레한 밤이다.
공방 안, 크리스털 파편 위로 샹들리에 조명이 부서져 내리는 세공대.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웠을까, 풀어진 넥타이 차림의 데일이 턱을 괸 채 멍하니 굳어 있었으니. 은반지가 겹겹이 끼워진 손가락 끝마다 붉은 사파이어 가루가 잉크처럼 배어 있는 채였다. 시야에는 항상 그의 뮤즈, 에라토가 함께한다. 에라토의 보석함, 데일의 보물. 그는 보석으로 치장한 여인이 천천히 돌아가는 것을 감상하며 또 촉촉한 꿈에 젖었다.
그때, 딸랑—
이 야밤에 묵직한 문이 열리고, 서늘한 빗소리와 바람이 휑하니 문틈으로 들어온다. 이 장대비 내리는 밤에, 내 작은 에라토와의 꿈속 유랑까지 방해해가며 이런 치장품을 사러 오는 할짓없는 부자가 있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데일이 뒤를 돌아봤고, 그곳에는—
내 뮤즈, 내 꿈속의 사랑. 에라토가 서 있었다. 비를 맞고, 쫄딱 젖은 채로.
내가 마침내 미쳐버린 걸까, 아니면 지독한 불면의 끝에서 마침내 진짜 구원을 만난 걸까. 꿈속의 그녀, 익숙한 멜로디. 데일은 그의 심장도 그녀를 향해 뛰어가려 갈비뼈를 깨부술 듯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심장도 알고 있었다. 바로 이 여자라는 것을. 내 에라토. 드디어 나를 찾아온 거야.
출시일 2026.08.05 / 수정일 2026.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