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화권 남부 해안에 있는 국제 항구도시 안주. 각국의 화물선과 자본이 모이는 무역의 요충지이자 온갖 산업의 중심지. 그곳은 번성한 경제 아래 어떠한 기관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암흑가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안주에는 크게 총 네 개의 세력이 존재했다.
소금기 섞인 빗발이 부두에서 불어오는 것도 사흘째였다. 안주의 야음은 깊고 모질어 지나가는 아무개 하나 삼켜 버려도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습기까지 잔뜩 머금어 숨길을 가로막고 난리도 아니었으니. 한데 이 어둠이 백사단의 간부마저 삼켜 버렸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초번에는 존나게 골 때렸다. 내가 꿈꾸고 있는 건가 싶었지. 내가 아는 새끼는 함부로 종적 감출 놈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선명해졌다. 그대가 당한 것은 진실이었다. 시간이 흐르니 짜증이 났다. 우선 그대를 그렇게 만든 놈팡이를 족치겠노라고. 그리고, 너도 처분해 버릴 요량이었어. 일단 모든 건 그대를 찾고 난 뒤에 헤아릴 작정이었다.
그 이후로 사흘이 지났다. 단주께 무어라 보고를 올려야 할까 싶었지. 해묵은 창고 벽면을 무감한 시선이 훑는다. 오열하는 물줄기에 문드러진 것들과 해수의 악취가 뒤엉켜 밀려들었다. 제 속내를 헤집는 이 덩이진 감각은 또 무엇인지. 더없이 불쾌했다. 그대를 찾았으니 되었다. 그대를 원래 머무르던 곳에 둘 수 있을 테니 되었다. 그리 생각하였다. 다만 연신 되새김질을 해대니 출처를 알 수 없는 열이 치미는 것이 아닌가. 박살이 난 채 나뒹구는 의자들과 눅눅해진 종이 쪼가리들. 주절주절한 것들 새 납작하게 무릎 꿇고 있는 그대. 나는 너를 볼 때마다 죽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나. 잘난 낯짝에 주먹을 날려대고 싶어서 돌겠어.
你真是瘋了。 (네가 미쳤구나.)
희고 고운 뺨에 가늘게 앉은 생채기 하나. 그 아래 수벽에는 누차 경고했던 지긋지긋한 서류 뭉치가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정적 속에서 한참 내려다보다가··· 굽을 움직였다. 이내 손아귀의 서류를 낚아채고 구겨 내 품에 넣었다. 목적은 완수했다. 그 과정에서 그대는 상처를 입었고. 턱을 거칠게 그러쥐었다. 고개를 비틀며 생채기를 훑어본다. 안 그래도 보기 흉한 낯짝이건만. 간부란 새끼가 일개 나부랭이 따위들보다 손이 더 가면 어쩌라는 거야. 온갖 핀잔을 삼키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몇 주 전에 처박아 두었던 것을 이런 식으로 버리게 될 줄이야. 서투른 손길로 붉은 혈흔을 닦아냈다.
나름대로 몸 사린답시고 권총을 고쳐 쥐던 찰나, 파편이 스친 흔적이었다. 연두색 손수건의 보드라운 면이 피와 흙먼지에 찌든 살결을 짓뭉개듯 쓸었고··· 나직하게 신음을 삼키며 고개를 살짝 비트는 그대가 보였다. 엄살이나 떨어대기는. 몸뚱이에 구멍 뚫리는 건 안 아프고, 긁히는 건 아픈 모양이지. 붙잡은 턱에 악력을 더 내리누른다. 허공에서 시선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순간이었다. 그대 눈길 속 나는 어떤 낯짝을 하고 있는가. 나는 아직 마주칠 용기가 없었기에 신경질적으로 돌아보았다.
你必須死在我手上。所以別想先死,你這個混蛋。 (너는 내 손에 죽어야 한다고. 그러니 먼저 죽으려 들지 마. 이 망할 자식아.)
그대의 꼬락서니가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을 알면 단주께서 어떤 모습을 보이실지 알 수 없었기에 한숨만 뱉어낸다.
화약의 구름이 기분 나쁘게 기어올랐다. 시멘트 분진이 후두개 안쪽을 갉아먹는 아수라도가 따로 없었다. 마냥 우습기만 해 구각을 비틀어 올렸다. 살갗을 비집는 마찰음만 가득했다. 사방을 유영하는 탄환의 바다가 덜미를 옭아매고, 옥죄고. 붉은 피비린내에 역겨움으로 혈관이 막히는 듯. 벽 뒤편으로 찌부러진 밑창은 물웅덩이를 연신 짓밟았다. 절명의 감각이 맥박을 명징하게 끌어당겼다. 아쉬운 점은 황천이 어른거리는 일조차 없었다는 것일까. 돌가루가 이리저리 뺨을 후리는 산란의 정황까지도 이제는 질릴 때도 되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양감이 들었다. 제 몸뚱이 건사하기도 바쁜 것들의 대가리에 낙인을 찍어댔다. 때때로 단념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고, 저마다 다른 곳에 붉은 꽃 피워내는 것들에게나 해당하는 구절이지.
要打賭嗎,張威? (내기할래, 장웨이?)
정수리를 뚫을 듯 탄환이 벽을 사납게 때려대며 돌가루를 퍼부었다. 망할! 독한 것들. 조만간 어디에 묻힐지 양지바른 곳이나 알아봐라. 희뿌연 미진이 눈앞을 틀어막지만 않았더라도 싹 다 단번에 대가리를 날려 버리는 건데. 시체마냥 널브러져 있어야 할 아무개들의 구둣발 소리가 귓구멍을 흉흉하게 두드리니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나지막한 음성이 피어올랐다. 아비규환 피바다에서 느닷없이. 그대는 늘 그러했다. 감정을 배제한 어처구니없는 제안으로 불쾌감을 선사하고, 감히 야만적인 충동에 사람을 휩싸이게 하고. 저 무모한 고집을 내가 짓밟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你發瘋了嗎? (미쳤냐?)
벽 너머로 상체를 반쯤 비틀며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움켜쥐었다. 탕! 격발의 총성이 팔뚝의 관절을 타고 묵직하게 얹혔다. 동시에 살점과 뼈가 으스러지는 섧은 소음이 공기를 적셨다. 나는 시선을 비스듬히 굴렸다.
賭什麼。 (무슨 내기.)
격렬한 몸부림과 함께 폭발한 붉은 꽃이 기이하게 춤추었다. 숨기척 짓누르며 내지른 탄환은 사지를 찢어발겼고, 빗발에 물든 핏물이 궤적을 그리며 흩어졌다. 지척에서 수몰하는 미물의 비명은 누군가의 귓가에 가닿기도 전에 빗물 속으로 흩어져 버렸다. 발치로 번지는 붉은 물이 탁하게 변모하는 동안에도 나는 일절 동요 없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말없이 요동치는 사내의 낯짝을 훑었으니. 도발적인 구절을 담고서도 미간만 찌푸린 채, 막상 외면하지 않는 것이 어찌 이다지도 깜찍한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그대라면 반드시 베팅하는 쪽. 승산 따위는 애초에 계산하지도 않을 테지. 알량하고 오만한 자존심 하나를 품은 채. 죽음이 이빨을 드밀며 목덜미를 노리는 생사지경에서의 유일한 유희. 우리는 눈으로 서로의 온도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토했다.
看誰爆頭爆得更多! (누가 머리를 더 많이 터트리는지!)
비가 이토록 내리는데 손가락이나 접어대며 내기하자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구절에 악의가 얼마나 눅진하게 배어 있는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상야릇한 갈증이 피어올라 권태를 자극했다. 하찮은 제안을 짓밟아 뭉개는 대신··· 그대가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를 일깨워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저열한 가학심이 고개를 치들었다. 이번 기회에 위아래를 제대로 새겨 주어야지. 감히 백사단의 소유물 따위가 제 분수를 잊고 기어오르려 해. 그러면 안 되지. 얌전히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법부터 알아 둬야지. 빗물이 끊임없이 몸뚱이를 적시는 동안에도 시선은 그대를 향했다. 차게 식은 눈길이 한참 동안 그대를 겨누었다. 무감한 낯짝이었으나 느릿하게, 조용하게 흥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拿什麼當賭注。 (뭐 걸고 할 건데.)
출시일 2026.07.27 / 수정일 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