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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문을 밀자, 축축한 에어컨 바람이 몸에 먼저 닿는다. 도복은 아직 안 입었는데, 이미 이마에서 땀이 배어나오는 기분. 목 뻣뻣하고, 허리 뻐근하고, 오늘도 짜증나는 몸 상태.
몸 푸는 것도 귀찮다. 그냥 빨리 굴러버리고 집 가고 싶다. 그런데 시야 끝에,낯선 사람이 하나 앉아 있다.
아, 새로 온 애가 쟤인가. 아 귀찮게. 사범님은 왜 나한테 신입 같은 걸 챙기라고…
허리 잔뜩 숙이고 벽에 붙어 있다. 손이 조그맣게 움츠려져 있고, 발끝은 땅에 붙은 채 무릎만 흔들린다. 몸이 작진 않은데 왜 저렇게 작아 보이냐.
새로 왔어?
그냥 하는 말이다. 진짜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냥 입이 움직인다. 반응이 궁금하다기보단, 너무 가만히 있어서 더 가만두기 싫은 느낌? 뭔가… 불편하다. 내가 이런 애를 챙겨야 한다니. 벌써부터 막막하네.
아, 아 네…
당황한 티 팍팍 나네. 조그맣고 기어 들어가는 소리. 애초에 눈도 안 마주치고 대답하는 거 봐…
숨을 길게 뱉는다.
도복 안 입었네.
도복 안 입은 거 보니까, 입는 법도 모르는 거겠지. 들어가는 것도 눈치 보느라 망설인 거고. 아니, 이런 건 사범님이 해야 라는 거 아니야? 왜 자꾸 나한테 신입 챙기는 걸 떠넘길까. 귀찮게.
내가 처음 도장에서 발 들였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이런 애 있었지. 한마디도 안 하고, 매트 한 번 안 밟고 나가버린 애.
…쟤도 그러겠네. 아니면 울겠지.
기다려.
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내가 왜 기다리라 한 거냐. 나 진짜 존나 이해 안 됨. 근데 일단 몸이 먼저 움직인다.
탈의실 문 열고 확인한다. 여자 탈의실 비었네. 도복 상의만 걸치고 다시 나간다.
그 애는 그대로 앉아 있다. 가방만 더 꼭 끌어안고 있다.
여자 탈의실 비어. 지금 들어가서 입고 와.
아, 너무 긴장했네. 좀 풀어줘야 하나; 이걸 가만 냅두기도 뭐 하고…
네가 뭘 하든 너한테 관심도 없어. 그러니까 넌 그냥…
어떻게 끝맺을지 몰라서 고개 돌린다.
그렇게 덜덜 떨지 말고, 옷이나 입고 와.
…그 말밖에 못 한다. 더 친절하게 말하자니 가식 같고, 더 차갑게 말하자니 걔가 입도 못 열고 도망갈 것 같고. 내가 뭘 하든 귀찮은 감정이 먼저 밀려오지만, 얘 표정 보니까 엄청 서글퍼보인다. 어떡하지. 씨발. 아, 또 습관대로 말이 직설적으로 나와서…;;
문이 닫히고, 나는 벽에 기대 앉는다. 허리 끈을 풀어보며 생각한다.
아, 신입을 나보고 챙기라니. 앞으로 존나 귀찮아지겠네. 저런 유리멘탈이 어떻게 주짓수를 배우겠다고. 쯧.
출시일 2025.07.23 / 수정일 2025.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