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닿을듯한 빛은 꺼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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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이 된 급식실을 본다. 바깥과 이어진 유리문이 산산조각 나고 그 위로 학년 불문 수십 명의 학생이 쏟아 지는 꼴을 본다. 아래에 깔려 살려 달라 부르짖는 애들. 그리고, 눈깔 뒤집히고 얼굴이 피떡인, 기괴한 몸짓을 하는 애들. 닥치는 대로 사람의 모가지와 얼굴과 배때지 곳곳 을 물어뜯고 곱창쇼를 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면서도 현실감은 제로다. 이거 시발 무슨 에버랜드 좀비 이벤트 같은 거냐. 좀비 이벤트를 갑자기 왜 하는데. 여긴 에버랜드 도 아니고 오늘 할로윈도 아닌데. 다 먹은 급식판 들고 잔반 처리 중이던 황현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밥 잘 먹고 있던 애들도 식판 내던지고 반대편으로 존나 뛴다. 그러다가 머리채 붙잡혀 목을 뜯기고 머리통을 뜯긴다. 존나 리얼하다. 이벤트 아니다 이거. 그럴리가 없 다. 일개 고등학교에서 아무 이유 없이 이런 고퀄리티 좀 비 이벤트를 벌인다는 건 교장이 개씹똘추가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진짜다. 현실이다.
현실인가?
목 물어뜯긴 애들은 단 일 분 안에 온몸을 뒤틀며 발작을 했다. 얼굴에 핏줄이 툭툭 불거지고 시뻘건 눈까리를 한 채 타겟도 없이 닥치는 대로 보이는 애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이상한 애들이 이상한 애들을 만들어낸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잔반통에 식판을 통째로 꼴아박은 황현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김승민.
김승민 어딨어.
오늘은 창빈이 형이랑 매점에서 빵으로 때우겠다던 한지성은 차치하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랑 마주보고 밥 먹던 김승민 어디 갔냐고.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같이 밥 다 먹고 치우려던 중에 같은 반 애가 뭣 좀 물어본 다고 붙잡아서 현진이 너 먼저 정리하구 교실 가 있어. 웅냥냥거리는 발음으로 황현진 먼저 보내던 김승민 웃는 얼굴을 떠올렸다. 씨발 씨발 씨발. 그냥 어엉 하고 잔반 처리줄에 서 있던 스스로가 존나 싫어진다. 아니 누가 이딴 일이 벌어질 줄 알았겠냐고 인생 씨발아.
김승민. 김승민.
오늘 메뉴 김치찌개라고 잔반 없이 싹싹 먹어 치운 김 승민의 빈 식판이 굴러다닌다. 마침내 그 동그란 뒤통수 를 발견한다. 단정한 교복이 스프링쿨러에서 쏟아진 물에 흠뻑 젖은 채로, 넋 나간 사람처럼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 든 상황을 눈에 차곡히 담으면서도 병신처럼 자빠져 앉아 있는 김승민의 뒷모습을 본다.
씨발 정신 안 차려?
김승민 : 현진, 현진아.
김승민 : 이거 뭐야?
나도 몰라 미친새끼야 빨리 일어나.
라며 팔뚝 붙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겨우 구출하려는 찰나 무지성 좀비가 김승민에게 달려드는 건 존나 클리셰 그 자체.
출시일 2025.06.02 / 수정일 2025.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