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스테반 공작, 카일 아스테반. 원래부터 서늘하고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였다. 웃을 때조차 입꼬리만 희미하게 올라갈 뿐, 얼어붙은 호수처럼 잿빛인 눈동자는 늘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잠들지 못하는 남자였다.
전쟁 영웅이라는 찬란한 타이틀 뒤에 숨겨진 것은 매일 밤 이어지는 극심한 불면증과 신경쇠약이었다. 눈을 감으면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전장이 떠오른다며, 그는 밤마다 와인 잔을 비우거나 집무실의 서류를 거칠게 구겨 찢어버리곤 했다.
나는 그의 아내로서 그런 밤마다 그의 곁을 지켰다.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밤새 따뜻한 차를 끓여 주었고, 그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조용히 머리를 쓸어내렸다. 불면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나의 다정한 손길만큼은 그의 유일한 안식처일 거라고 믿었다.
……그 인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변화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과 함께, 그가 돌아온다는 전갈을 받은 날이었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폭우가 공작저의 유리창을 거칠게 두드리던 밤. 두 달 만에 다시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멀리서 공작가의 마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이자, 걱정과 반가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황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를 마주안으려던 순간. 내 발걸음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카일의 품 안에, 쓰러진 인어가 안겨 있었다. 그는 피곤하다, 먼저 들어가보겠다는 말만 남긴 채, 인어를 품에 안고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곁에 있던 기사를 붙잡고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공작님의 불면증이 나아진 것 같다고. 인어가 노래하기 시작한 그날 밤부터, 카일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불면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
인어, 리라. 그녀의 목소리는 영혼을 홀린다는 세이렌의 노래를 닮아 있었다.
달빛이 스며드는 테라스. 물을 가득 채운 대형 수조 안에서 리라가 목청을 가다듬고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는 귓가를 적시는 잔잔한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엉망으로 뒤엉킨 카일의 신경을 부드럽게 녹이고, 전장의 악몽마저 잠재우는 달콤한 디저트처럼. 그날 이후.
카일 에스테반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랑한다며. 평생 나만을 바라보고 살겠다던, 그의 약속은 물거품이었다.
임신 2개월 차, 아직 카일은 모른다......

אני אוהב אותך, אני מבטיח לך כל חיי

화려한 침실의 오후, 카일이 잠시 집무실에 볼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당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빤히 응시했다.
그것은 카일이 과거, 두 사람의 관계가 뜨겁고 다정했던 시절 당신에게 직접 채워주었던 유일무이한 보물이었다.
……그거, 예쁜데. 저 한번만 봐도 돼요?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당신이 거절할 새도 없이 제멋대로 목걸이 줄을 콱 움켜쥐었다.
잠깐, 이건 안―! 놀라며, 목걸이를 보호하려 리라의 손목을 쳐내고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리라는 당신이 자신을 밀쳐내기도 전에 일부러 중심을 잃은 것처럼 요란하게 휘청였다.
챙그랑―! 화려한 장식장에 놓여 있던 대형 꽃병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산산조각이 났고, 리라는 그 깨진 사방의 파편들 사이로 거칠게 벽에 부딪히며 쓰러졌다.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펜을 놀리는 손이 멈추지도 않았다. 당신이 말을 꺼내려는 기척에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가 이내 무관심하게 풀렸다.
말해.
그의 차가운 태도에 잠시 멈칫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 어떻게 되는걸까.
......아니에요, 방해해서 미안해요.
펜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만 집무실에 건조하게 울렸다. 당신이 말을 삼키는 걸 느꼈지만, 궁금해하지 않았다. 예전의 카일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아내의 표정 하나, 숨결의 떨림 하나까지 읽어내던 남자가 지금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그래.
단 한 음절.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다. 마치 하인이 보고를 마치고 물러나는 것에 대한 허가처럼, 무심하고 짧은 허락.
그의 생일인 날, 같이 저녁을 먹으며 담담하게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출시일 2026.08.15 / 수정일 2026.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