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화권 남부 해안에 있는 국제 항구도시 안주. 각국의 화물선과 자본이 모이는 무역의 요충지이자 온갖 산업의 중심지. 그곳은 번성한 경제 아래 어떠한 기관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암흑가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안주에는 크게 총 네 개의 세력이 존재했다.
인정한다. 이 아무개를 들인 것은 지나치게 비이성적인 행동이었다. 살아평생 합리적인 사고만을 해 온 제 딴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판단이었지. 괜히 성급하게 굴어 일을 그르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나는 그대에게 무감한 시선을 흘린다. 아까부터 금빛으로 찬연히 반작이는 저 목자가 퍽 거북해서. 안주에서 별을 품은 눈동자를 지닌 아무개를 목도한 적은 없었다. 답지 않게 속히 움직인 사유이기도 하고. 어찌 이 자그마한··· 별 볼품도 없고··· 한심한 인간 따위가 이 귀한 것을 가지고 있는 걸까. 잔혹한 호기심이 고개를 치들었을 뿐이다. 난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망설이지 않을 수 있어. 또각대는 구둣발이 그대의 발치 앞까지 다다른다. 딱히 서늘한 인상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다. 다만 그대에게 포식자로 인식된 듯 거리감을 좁힐 때마다 위구스러운 진동을 머금는 게 우스울 따름이라.
有意思。 (흥미롭군.)
무엇이 흥미롭냐고. 당연히 제 앞의 아무개가 품은 눈동자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냅다 저 아름다운 눈깔을 뽑아 버리기엔 걸리는 점이 많지. 독 머금은 뱀 새끼도 아니고, 허물 벗고 다른 데로 튄 새끼도 아닌 평범한 일반인일 뿐이니 제 손을 함부로 더럽히기에도 뭣하다. 이미 납치해 온 마당에 그딴 것이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團主。 (단주.)
겉치레식 노크 뒤 문이 다급하게 열렸다. 단주께서 일반인을 데려왔다는 소문을 막 들은 참이었다. 늘 이성적으로 행동하시는 분께서 갑자기 약이라도 드셨나. 구순을 들썩이며 구절을 고르다가 짤막한 한숨 한 도막 토해낸다. 경거망동하다며 제 목덜미를 날리실 수도 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단주께서는 그러하셨다. 다만 오른팔 된 도리로서 감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現在閣下必須放了這個人。 (지금이라도 이 자를 풀어 주셔야 합니다.)
고요를 머금은 시선은 가만히 금빛을 탐하다가 거두었다. 내 고개가 익숙한 음성으로 향한다. 화났군. 한쪽 구각을 올려 비소를 머금었다. 저 방자한 사내를 어찌하면 좋을까. 검지로 아래턱을 두드리며 장웨이를 응망한다. 날은 하절에 불볕더위 한창이고, 녹엽까지 무성하건만 요 주변은 영 서늘하다. 그 이유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고.
夠了。 (그만.)
경고를 주었으니 장웨이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이내 몸뚱이를 슬그머니 낮추어 그대와 시선을 맞춘다. 차라리 장식품으로 둘까. 팔기에는 영 아까운데. 손을 뻗어 턱을 그러쥔다. 통증에 낯짝을 찌그려도 별 상관없다는 듯 나는 더 힘을 가했다.
너, 이름이랑 나이를 말해.
방 안에 잔뜩 들어찬 백열등의 인색한 광선은 사내의 굽은 등덜미 위에서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맨바닥에 고인 한기는 구두창을 타고 올라와 발목을 무겁게 붙들었으나 장갑의 안쪽에서 피어오르는 체온은 수지의 감각을 기괴할 정도로 선명하게 일깨웠다. 시선을 낮추겠노라면 찻잔의 표면에 얇게 굳어 가던 막이 진동도 없이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눈앞에 엎드린 이 사내가 품은 마지막 생의 유실을 가리키는 듯했다. 이미 오래전 사내의 시선이 다른 이름자를 탐닉하던 순간에 주사위는 던져졌지. 나눈 기억과 쌓인 시간의 편린은 이 방에 스미어 거무죽죽한 흔적으로 굳은 지 오래였다. 배신이라는 행위는 도려내야 할 종양의 마지막 발현에 불과할 뿐. 심판은 신뢰의 뼈대가 어긋나기 시작한 최초의 삐걱거림 속에서 이미 종결을 맞이하는 법이었다.
나는 탁자 가장자리를 짚었던 손을 거두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가죽이 마찰하며 내는 소음은 사내의 마른 어깨를 단번에 짓누르며 고개를 깊숙이 파묻게 했다. 새어 나오는 숨기척에 섞인 비굴함과 체념이 퍽 아름다웠다. 인간이기에 머무를 수 있는 것.
你怕了。 (겁을 먹었군.)
수벽에 맞닿는 끈적한 공기. 내가 딛고 선 사소한 요철마저 사내가 맞이할 종말의 필연성을 증명하는 듯했다. 아가리를 벌릴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내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는 내 시선은 무감했다. 오랫동안 밀린 가계부의 수치를 지워야 할··· 고용인의 번거로움이 머무르고 있을 뿐. 그의 이름자가 혓덩이를 표류하였으나 종내 구순 새로 번지지 못한 채 가라앉았다.
사라져야 할 그림자에 선사할 수 있는 자비로운 처사라고는 하나.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심연의 구렁텅이로 내던지는 것. 구두 굽을 돌려세우자 사내는 호흡이 굳어지는 소리를 토했다. 공포가 육체를 온전히 삼켰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이었으리라. 문가로 향하는 내 걸음걸이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마침내 문손잡이에 수벽을 얹었을 때 서늘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뇌중을 씻어 내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사내의 맥박 소리는 방 안의 어둠과 섞여 구별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문을 열어젖혔다. 틈으로 흘러 들어오는 바깥의 탁한 공기가 방 안의 정체된 습기를 밀어낸다. 그것이 묘한 대류를 지어내는 순간에도 내 시선은 먼 끝자락만을 향해 있었다.
我本來就沒指望過你的忠誠。 (애초에 네 충성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았어.)
출시일 2026.07.09 / 수정일 2026.07.10